모두 다 각자의 우산을 지녔으니

사노 요코, 《아저씨 우산》(김난주 옮김, 비룡소, 1996)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사노 요코 《아저씨 우산》


아저씨가 우산을 들고 있다. 표지에서도, 속표지에서도, 첫 장면에서도 아저씨는 우산을 들고 있다. 아저씨의 우산은 “까맣고 가늘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림책 첫 장면


아저씨와 우산은 마치 한 몸이라도 되는 듯 언제나 함께 한다. 문제는 행여나 우산이 젖을까 비가 와도 우산을 펴기는커녕 꼭 껴안고 뛰거나, 버젓이 자신의 우산을 놔두고 낯선 사람의 우산을 같이 쓰기까지 한다. 이 정도가 되면 민폐가 따로 없다.


그림책의 한 장면


아저씨에게 우산은 무엇일까? 지팡이처럼 의지하고, 애착하는 물건이지만, 묘한 아집도 느껴진다. 자신의 우산만 아끼고 집착하는 모습을 보니 뭔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좁을 것만 같다. 아저씨처럼 사회생활을 하다가는 인간관계에서 이런저런 장애가 생길 것만 같다.


우산은 비바람과 폭풍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집 안에서가 아닌 바깥에서 쓰는 물건이다. 그림책에서 우산이 갖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장면은 어린 소년이 나타났을 때이다. 비가 오자 우산이 없는 아이는 아저씨 우산을 같이 쓰자고 말한다. 가끔 아이들을 보면 심플하면서도 핵심을 찌른다. 비가 오고, 우산이 있으면, 그냥 쓰면 된다. 그것이 바로 우산이 할 역할이니까.


하지만 아저씨는 애착하는 우산이 젖을까 봐 벌벌 떠는 사람이다. 아이에게 씌워줄 리 만무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우산을 손에 쥔 아저씨는 정작 본인 스스로도 잘 누리지 못하고, 당장 필요로 하는 타인에게도 베풀지 못한다. 인색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나는 여기서 ‘두려움’이란 낱말이 먼저 연상된다.


그림책 속표지에서 아저씨는 독자들에게는 훤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우산을 등 뒤로 숨기며 들고 있다. 이 장면에서 내가 뒤에 숨기고 있는 어떤 면, 하지만 충분히 펼치지 못한 어떤 면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산의 검정색을 보았을 때 어쩌면 내 안의 어떤 그림자적인 면일 수도 있겠다.

그림책 속표지

검정 모자, 검정 외투, 검정 신발, 그리고 검정 우산까지. 정말이지 중무장을 한 모습이다. 이런 아저씨에 비해 같이 쓰자고 우산을 가리킨 해맑은 어린 소년의 옷차림은 가볍기만 하다.


다행히 빗속에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즐기는 아이들 덕분에 아저씨는 우산을 펼친다. 아저씨가 우산을 활짝 펼치는 이 장면은 엄청나게 통쾌하다.


이어서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 한 마리가 등장한다.


강아지는 축축하게 젖은 몸에 묻은 빗방울을 툴툴 턴다. 아저씨 또한 자신의 젖은 우산을 빙글빙글 돌려 빗방울을 털어낸다. 아이들과 강아지를 통해 비를 극복한 아저씨는 우산을 쓴 채 대중 속으로 나아간다. 아저씨의 우산은 어쩌면 사회에서 부딪히는 여러 감정적인 문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저씨 안에 우산과 같은 보호막이 있어서 축축한 감정적인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툴툴 털어낼 수 있는 그런 내성이 이미 갖춰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자신 안에 자신을 보호할 소양을 이미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나친 방어나 두려움 때문에 맘껏 펼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비를 오롯이 맞고 있는 길가의 나무나, 길고양이나, 강아지에 비할쏘냐. 그들에 비하면, 어쩌면 우리는 모두 다 저마다의 우산을 갖고 있다. 사노 요코의 《아저씨 우산》은 마치 바깥 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감정적인 문제들을 두려워말고 대응하고, 나름의 우산성을 활용해 젖으면 툴툴 털고, 말리면 된다는 말을 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우산은 우리를 지탱해주는 각자의 신념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관계 속에서 두려워 말고, 적절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활짝 펼치고, 또 다른 타자와 그 공간을 공유해보는 것도 새로운 문을 하나 여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맨 마지막 장에서 아저씨네 집을 한가운데로 하고 한편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한편에는 검정 우산이 활짝 펼쳐져 있는 장면은 또다른 감동을 준다. 검정 우산이 또 한 그루의 나무 같기만 하다.


내게 있어 이 우산은 무엇인가? 나는 이 우산을 활짝 펼쳐 잘 활용하고 있는가? 《아저씨 우산》을 보았을 때 분명한 것은 내 몸과 정신에서 떠난 것이거나,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내 내면에 존재함을 깨닫는다. 단지 내가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화난 아이, 소피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