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에 서서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햇살 속에 서서 눈을 감는다. 도서관 가는 길, 햇살이 좋다. 멈춰 서서 해바라기처럼 해님 바라기를 한다. 햇살 길을 졸졸졸 따라간다. 여름에는 바람 샤워를 하고, 겨울에는 햇살 샤워를 한다. 길가에 서서, 길을 걸으며 그렇게.


책을 빌려, 바로 인접한 공원 농구 코트에 섰다. 초록색 바닥으로 햇살이 가득 내려앉는다. 텅 빈 코트에 오두카니 서있는데, 비둘기가 다가왔다.



뭔갈 주워 먹고 뱉어 내고 바쁘다. 질리지도 않고 부리로 찍었다가 뱉고 찍었다가 뱉고 반복한다. 다가가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햇살 속에 서니 내 그림자가 드러난다. 아, 그 누구의 그림자도 아닌 내 그림자. 가 그림자인지 그림자가 나인지 모를 며칠을 보내느라 그림자를 깜박 잊었었다. 햇살이 내 몸에서 그림자를 갈라놓는다. 실제 내 키보다 훨씬 더 다. 늘의 한겨울 햇살은 내 그림자까지 말려줄 기세다. 그림자를 비둘기가 가로지른다. 큼직한 비둘기의 그림자도 뒤뚱뒤뚱 따른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고궁 뮤지엄샵이나 기념품샵에 들렸을 때 내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어떤 물건이 함께 간 일행이 말하고 나서야 보일 때가 있다. 엽서일 때도 있고, 인형일 때도 있고, 팔찌나 컵일 때도 있다. 햇살 속에 멍하니 서있던 나는 비둘기를 따라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주시했다.


떨어진 마른 느티나무 잎사귀들 사이 사이로 떨어져있는 작은 씨앗 알갱이를 발견한다. 느티나무 씨앗일까? 작고 딱딱한 씨앗을 몇 개 주워 비둘기 쪽으로 던져준다. 비둘기가 재빠르게 주워먹었다가 내뱉는다. 그저 모래나 작은 돌멩이인줄 알았는데, 비둘기 덕분에 쌀알만한 단단한 씨앗을 만져보았다. 아니 실은 이리 많은 씨앗들이 바로 내 곁에 이렇게 많이 있는 줄도 몰랐다. 씨앗 덕분에 비둘기가 그냥 비둘기가 아닌 햇살 속에서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가까운 일행 같다.



비행기 굉음을 따라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느티나무 마른 잎사귀도 바람에 날고, 씨앗도 비행하고, 비둘기도 날고, 비행기도 날아간다. 그리고 겨울 햇살이 공원 안을 난다. 그들을 느끼고, 그들을 주시하며, 내 마음 또한 날아오른다. 한동안 공허했던 나의 일상이 다시 꿈틀거림을 느낀다. 허접하고 삭막했던 내 내면풍경으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미지가 피어오른다.


여자 아이 두 명과 남자 아이 한 명이 노란 풍선을 들고 공원을 가로질러갔다. 햇살 속에 서서 나는 노란빛을 띤 흰 해님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귀하고 값진 이 순간을 만끽하고 에너지를 체인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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