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는 화장실에 간다며 집을 나간 엄마와 단 둘만 살았던 것일까. 집안 어디에도 아빠의 자취는 없다. 애초에 미영이는 엄마와 단 둘만 이렇게 쭉 지내왔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에 간다던 엄마는 그 뒤로 행방이 묘연하고 아빠 없는 아이인 미영이는 이제 엄마까지 없는 아이가 되고 만다.
외톨이인 미영이는 하필이면 식구가 아주 많은 집으로 들어가 일하는 아이가 되고, 글자를 잘못 써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외골수 성격을 다독여줄 사람도 없으며, 아프거나 옷과 신발이 작아져도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미영이》는 여백이 많은 모노톤의 심플한 그림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함의는 심플하지는 않다. 인간 심연의 공포인 ‘버림받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다는 공포는 모든 것을 타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영유아 시기부터 시작된다. 허기에 찬 아이가 분유를 찾지만 아무도 와주질 않을 때 이제 막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내버려진 슬픔에 까무러치듯 운다.
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미영이는 영유아 아기처럼 울부짖기보다는 슬픔을 안으로 억누른다. 그림책에서는 미영이의 아픔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눈물방울 같은 눈발이 날린다.
그림책에서는《미영이》처럼 버려진 존재로 강아지가 등장한다. 미영이는 주인을 잃고 낯선 곳으로 찾아온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똥도 치워주고, 산책도 시켜주며 돌본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고 살아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미영이는 강아지를 돌본다. 자신은 엄마를 잃고 엄마 잃은 강아지의 어린 엄마가 된다.
미영이가 강아지를 돌보는 장면은 가슴을 찌르는 그 뭔가가 있다. 밥도 주고 똥도 치워져야 하는 미영이는 무턱대고 강아지를 예뻐하지는 않는다.
강아지가 예쁘지 않다.
캄캄해지면 강아지가 무척 낑낑거렸다.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난다.
손가락을 물려 주면 조용해진다. (《미영이》에서)
이 장면에서 미영이는 강아지 곁을 떠나지 않고 그 곁을 지키며 마치 열이 있나 없나 살피듯 이마를 어루만져준다. 자신은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살핌을 필요로 하고, 지금 보살펴야 할 존재를 묵묵히 보살핀다.
어린 시기에 처음으로 경험한 원체험은 실로 강렬해서 그 후 부지불식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회나 관계 속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그 영향 속에 놓이고 만다. 미영이의 엄마는 마침내 돌아오기는 하지만 앞으로 미영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애착을 갖고 있는 존재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나 불안감을 갖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표지에서 정면을 응시하던 무표정의 미영이는 뒷표지에서 처음으로 두 볼이 발그래하게 달아오르며 빛깔을 품는다. 생기를 되찾은 것이다. 본문 안에서는 단 한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생기, 뒷표지에 이르러 마침내 찾는다. 다행이다. 끝끝내 살아내고 또 다른 타자까지 품은 이 세상의 모든 미영이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