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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획득법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일요일마다 교회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을 갖고 있다. 7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남자아이들이다.


1시간 반 동안 네다섯 권의 그림책을 읽고 함께 토론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데, 중간에 5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질 때도 있고 쉬는 시간 없이 이어서 할 때도 있다.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오가는 것은 언제든 자유다.

어쩌면 이 시기의 아이들에겐 1시간도 아니고 1시간 반은 긴 시간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론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들에겐 1시간 반은 훌쩍 지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날 아이들은 쉬고 싶어 했다. 헐렁하게 이끌었던 나는 쉬는 시간 없이 그냥 이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학생이 "쉬는 시간 주세요." 한다. 내가 "왜?"하고 묻자, "멍 때릴 시간이 필요해요." 한다.


나는 금방 납득한다. 멍 때리는 시간 중요하다. 하루 일과 중 태반이 멍 때리는 시간인 내게 이 대답은 즉효 했다. 그래서 그래 쉬어라, 어서 쉬어라, 멍 때려라며 곧바로 읽으려던 그림책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쉬게 했다.


현실은, 멍 때리기는커녕 전쟁 같은 역동적인 5분 동안의 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이 역동적인 시간이 곧 멍 때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고정관념이 박힌 내 머릿속 멍 때리기란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그렇게 띵~하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에겐 아무 생각 없이 온몸을 날려 생각에서 멀어지는 시간이 바로 멍 때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내 예상을 깨고 지나치게 역동적인 쉬는 시간을 가졌지만, 내 특징을 간파하고 날린 학생의 멘트는 나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아이들의 멍 때리기 시간을 동조까지 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나 단순하다.

놀라운 요즘 아이들은 이런 나의 속성을 진즉에 간파한 것일까. 뭐 그렇다고 해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가 않다. 멍 때리고 싶다는 이 멋진 멘트를 날리는 아이 앞에 뭐가 대수랴.


오늘 올린 이글 대문 이미지는 멍 때리고 싶다는 학생이 그린 그림이다.

파란 구름이 모자를 쓰고 주먹 쥐고 우뚝 서 있다. 나는 아마 구름을 그려도 둥둥 하늘에 떠다니는 그런 구름을 그렸겠지. 내가 생각하는 멍 때리는 구름을 말이다. 하지만 학생은 이렇게 역동적인, 마치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 같은 그런 구름 캐릭터를 그렸다. 역시 아이들의 멍 때리기란 생각을 멈추고 온몸을 날려 움직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아아, 이 아이들을 놀게 해야 하는데, 나는 아주 정서적인 그림책 읽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책을 읽다가 이런 역동적인 캐릭터가 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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