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구랑 얘기하냐

by 강이랑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혼자 집에 있던 아버지는 잠을 못 자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고 호소한다.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엄마 장례를 치른 뒤로 아버지는 다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는데, 엄마 없이 이제 누구랑 이야기를 하냐며 한탄한다.


엄마는 말수가 적은 편에 속했는데 아버지는 참 말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본인의 눈에 거슬리거나, 관계 속에서 돈이나 과시, 욕망 등 자신의 그림자와 관련된 일을 겪고 나면 한시도 가슴에 담아두지 못하고, 어머니를 붙들고 하소연을 해댄다.


혼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외롭게 지낸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배려하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면 좋으련만 남 험담하는데 온통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면 엄마는 자신의 몸이 불편하고 힘든 것은 내색도 하지 않고 그런 남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엄마 자신은 동네 사람들을 험담 하거나 남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아버지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자신만 잘 났고 남을 헐뜯거나 험담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왜 그런 남편의 이야기를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들어주었던 것일까? 왜 좀 더 남편을 타이르고 다독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버지하고 함께 있어보면 안다. 오직 자기 자랑과 남 비방과 험담뿐이라는 것을. 이런 사람과 하루라도 함께 있다 보면 엄청나게 기가 빨린다. 엄마는 어쩌면 기가 빨리는 쪽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사는 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보니 아버지 기에 눌려 병든 몸으로 엄만 그저 묵묵히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부 일은 칼로 물베기라고 그 깊은 내막까지 내가 알리 없다.


나는 아버지가 "이제 누구랑 얘기하냐"라고 하소연했을 때 속으로 어디 한번 엄마 없는 현실을 겪어봐란 생각을 했었다. 엄마를 잃은 아버지는 불면증을 회피하고 말할 상대가 간절했던 것일까? 잠을 못 자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지옥이기도 하다. 엄마 덕분에 한번도 홀로인 삶을 살지 않았던 아버지는 지금 눈앞의 자기가 처한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던 것일까? 또다른 숨겨진 본능이나 욕망이었던 것일까?


엄마 장례식이 끝난 바로 다음날 들깨 모종을 옮겨심기 위해 엄마의 손을 대신해 농사일을 돌보고 말 상대를 해줄 사람을 모셔왔다. 병마에 고통스러워하던 엄마를 지켜보고, 엄마를 잃은 상황보다 더 지옥 같은 현실 상황이 바로 여기 내 눈 앞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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