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49제 때의 일이었다. 서울 근교에 사는 작은 언니, 셋째 언니, 나는 아침 일찍 함께 모여 버스를 타고 고향집을 가기로 했다. 작은 언니와 내가 고속터미널에 일찍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버지가 작은 언니에게 전화해서 셋째 언니도 오느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그 어느 딸이든 챙긴 적이 없던 아버지가 셋째 언니를 다 챙기고 참 별일이다, 하고 있는데 드디어 셋째 언니가 도착했다.
셋째 언니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향수를 좀 사 오라고 했단다. 어쩌면 아버지가 기다리는 것은 셋째 언니가 아니라 셋째언니가 가져올 향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아버지는 셋째 언니가 사 올 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49제 때에.
나의 아버지는 전혀 존경심이 일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와 이혼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엄마는 이런 아버지이지만 67년간을 해로하고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며 잠을 잘 수 없었을 때 아버지 손을 잡아야 잠이 온다며 아버지 손을 찾았었다. 아버지 또한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거나, 병이 악화되었을 때 불안에 떨며 괴로워했었다. 동갑인 이 두 사람이 둘도 없는 친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 명의 남자, 한 명의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
발인식 때에도 비가 왔는데, 49제 날에도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엄마가 생전에 즐겨 드셨던 음식을 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각자 몇 가지씩 준비하여 산소로 향하는 길에 아버지가 엄마 꿈을 꾸었냐고 물어본다. 작은 언니가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자신은 엄마가 꿈에 안 나타나 좋다는 말을 한다. 그러자 평소 온화한 작은 언니가 조금 목소리를 높이며 "저는 엄마가 꿈에 나와서 좋은데, 아버진 아닌가 보네요. 저는 앞으로도 엄마가 꿈에 나오셨으면 좋겠어요."한다. 그러자 다른 딸들도 모두 "저도요, 저도요."거든다.
살아계셨을 때 엄마는 평소 꿈을 꾸지 않으셨지만 현실 논리를 쫓다가도 중요한 순간 아버지는 상징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런 아버지가 엄마가 꿈속에 나올까 두려워하신다. 그 이유는 물론 있다.
나는 49제를 드리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엄마가 아버지 꿈속에 나타나기를.
49제를 마치고 고향에 사는 큰언니 차로 읍내로 이동할 때였다. 셋째 언니가 아버지한테 향수를 건네며 가격을 말한다. 아버지가 향수값을 주기로 했다고 셋째 언니는 말했지만 아버지는 향수만 받고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셋째 언니도 더이상 적극적으로 의사 전달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각성한 사람은 셋째 언니일 것이다. 투잡을 뛰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간다. 힘든 셋째 언니의 상황을 잘 알면서도 아버지는 향수를 부탁해 놓고는 준다고 한 향수값을 모른 척한다. 하지만 셋째 언니 또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다른 자매들은 이 상황을 인지를 하면서도 섣불리 나서질 않는다. 이 일은 셋째 언니 스스로가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자매들은 아버지를 재인식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