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례식이 끝나고 고향집으로 갔다. 비가 많이 온 터라 고향집 뒷마당에 청록색 작은 우산을 펴서 말려 두었다.
우산과 양산을 겸하면서 가볍고, 사용감이 좋아 언제나 상비하고 다녔다. 그런데 우산이 없어졌다.
나는 아버지한테 우산 못 봤냐고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모른다고 잡아뗀다. 그렇다면 간밤의 비바람에 날아갔나 보다 생각하며 주변을 돌아다녀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여름 소나기와 햇살을 막아주고 엄마 장례식 동안에도 내내 함께 했던 우산이라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향집에서 3일을 지내고 돌아가는 날이었다. 아버지가 버스터미널이 있는 읍내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 차를 타고 읍내에 도착했는데 아버지가 5만원 지폐를 내밀며 "서울 가거든 이 돈으로 양산 사."라고 그러신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도 돈을 쓰지 않는 인색한 아버지는 아무 이유 없이 돈을 건네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지폐를 내미는 데다가 '양산'을 사라고 콕 집어 말한다. '이게 머선 일인가?'
돈을 내밀며 "차표"를 사라는 것도 아닌 "양산"을 사라니! 나는 어쩌면 아버지가 내 우산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뒷마당에 말려둔 내 우산을 보았다. 돈 문제 빼고 아버진 주변 상황이라든가 전후 상황을 돌이켜보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 바로 눈앞에 발생하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극히 충동적이고 자기감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어느 시기였을까. 삶의 방식에 있어서 아버지와 반대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싶었다.
둘째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충분히 배우질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결혼하여 부지런히 일해 많은 논밭을 일구며 시골 부자가 되었다. 힘든 농사일에서 손을 뗀 노년에는 이곳저곳의 수많은 산을 직접 오르고 책자로 공부하여 묘자리를 잡아주는 지관일을 하는 등 돈에 있어서 젊었을 때는 부모에게 손내밀지 않고 나이들어 자식들에게 손내밀지 않고 자수성가하여 지금의 부를 일구었다.
아버지에게는 '돈'과 '땅'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사람이 우산을 사라고 돈을 준다.
감잡았다.
우산이 날아가려면 고향집 담장을 넘어야 하는데 간밤의 비바람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읍내까지 태워다 준 아버지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정중하게 아버지 돈은 거절했다.
갑자기 사라진 우산에 대한 허함과 결핍 때문이었을까? 우산만 보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없었던 우산 욕심이 생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