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 날이었다. 오빠네 부부, 남동생네 부부가 고향집에 속속 도착했다. 오빠의 진행을 따라 우리는 유품 정리를 시작했다.
엄마 유품 중에서 새언니와 올케와 나는 각각 맘에 드는 편한 일복 바지를 하나씩 챙겼다. 내가 고른 바지에는 유독 엄마 냄새가 많이 배어있었다. 엄마는 평소 내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언니들과 며느리들이 사준 옷이나 본인이 산 옷 중에서 나한테 맞을 것 같은 옷을 골라 입으라고 건네곤 했었다.
새언니가 엄마의 옷을 정리하다가 외출복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발견하여 내게 건넨다. 많기도 하다. 역시 큰손 새언니다. 혹시 몰라 나도 엄마 바지 주머니, 웃옷 주머니란 주머니를 뒤져본다. 한 푼도 안 나온다. 올케도 찾았다. 엄마 옷 주머니에서 찾은 돈을 보여준다.
어제 아버지는 들깨 모종일을 하러 오신 팔순 어르신께 엄마 옷 중에 새 옷 골라놓을 테니 입을 거냐고 물어봤었다. 어르신이 그러마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따로 어르신께 드릴 엄마의 옷을 골랐다. 어르신께 드릴 옷이 커다란 마대에 한가득 찼다. 버릴 옷도 몇 마대나 되었다.
또 다른 엄마의 공간이기도 했던 다용도실도 대대적으로 청소했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자 방이 하나 생기고 여기저기 빈 공간이 늘어났다. 아버지는 가끔씩 참견하거나 멀찍이 떨어져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유품 정리를 완료하고 옷을 넣어 둔 마대 주변에 모여있었을 때였다. 지금 당장 버릴 마대를 따로 옮기다가 올케가 어르신께 드릴 옷이 들어있는 마대를 만진다. 그때 내가 "그건 어르신 드릴 옷인데."하고 말했다. "가만 놔둬야!!! 왜 건드려!!!" 빛의 속도로 반응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어느샌가 마대를 붙잡고 섰다. 귀도 밝고 발도 빠르기도 하시지. 거의 순간이동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호통소리는 천둥소리에 가까웠다. "아버진 잘 모르면서 왜 그러세요오." 오빠까지 한 소리 하고 난리 난리 생난리다. 불쌍하기도 하지. 올케는 넋이 나가 있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올케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었다. 올케는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아버지 집에 청소하러 자주 오겠다고 자처했었었다.
"아버님 왜 그러세요. 저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요."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스스로 청소하러 오겠다던 둘째 며느리였는데, 청소는 물 건너갔다. 유품 정리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참여한 올케였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 또한 괜한 말을 했나 싶기도 하고,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나서야 할 때에는 안 나서고 나서지 않아도 될 때는 어김없이 나선다.
차라리 다행이다. 무슨 좋은 일 있다고 주말마다 청소하러 온단 말인가. 둘째 며느님이시여, 비록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다이렉트로 맞으셨지만 부디 전화위복으로 삼아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