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로 올라온 바로 다음날 남동생이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고향 읍내에 살면서 공공근로일을 하며 생활하는 남동생은 장애인 2급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두어 달 전부터 남동생은 몸의 이상을 자주 호소하곤 했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의 아들딸보다는 엄마의 아들, 엄마의 딸이었다. 지적 장애가 있는 남동생은 특히 엄마의 아들이었다. 남동생은 새벽이나 아침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많게는 하루에 대여섯 번도 동생 전화를 받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평정심을 유지한 채 동생과 통화하곤 했다.
엄마의 죽음은 아버지 다음으로 동생에게 가장 큰 타격일 것이다. 동생은 자꾸 힘에 부치다는 공공근로일을 아예 그만두고 아버지가 적적할까 봐 고향집에 며칠 가 있겠다고 한다.
"너 아버지 비위 맞출 수 있겠어?"
"누나 걱정 마,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밥도 짓고 설거지도 나 잘해."
"그래 알았어. 너 근데 아버지한테 화 안 내고 잘할 수 있냐고?"
"그것도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불 같은 성격의 두 사람이 함께 있겠단다.
아버진 자신의 장애를 가진 둘째 아들을 살뜰히 챙길 분이 아니다. 챙겨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말이라도 잘했으면 좋으련만 자신 맘에 들지 않으면 동생에게 윽박지를 게 뻔하다.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나도 속이 뒤집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동생이 같이 있겠다고 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걱정이 된다. 무슨 일을 시켜도 아버지가 고분고분 좋은 말로 시킬 분이 아니다. 동생에겐 몇 번이고 세심하게 설명해도 모자랄 판인데 아버지한텐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3일째가 되어도 두 사람이 잘 지낸다. 동생은 읍내 자기 아파트보다도 갑갑하지 않고 좋다며,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잘 지낸다는 것이다. 그럼 됐다 싶어서 안심하고 다음날 아침 통화를 하는데 읍내 자기 집이라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계속 잘 지낼 것처럼 해놓고는 이게 무슨 일인가.
"왜 벌써 왔어? 한참 있겠다매?"
"아니, 나는 계속 있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나더라 그만 가래"
"왜?"
나는 영문을 몰라 계속 질문한다.
"아버진 친구들하고 알아서 잘 지낼 테니까 난 가래서 그래서 왔어."
지적 장애를 가진 데다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 아들을 살뜰히 챙기라는 말은 설마 안 한다. 읍내 아파트가 갑갑한 아들에게 좀 더 있다가 가라고는 못할지언정 3일도 못 돼 집으로 가라고 한 건 정말이지 너무했다.
아버지 성격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도 엄마 없이 혼자 살 아버지가 적적할까 봐 와 준 아들을 그만 가라고하다니. 친구도 친구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동생과 나는 이때까지도 몰랐다.
작은 아들은 이후로 아버지로 인해 많은 내적 파동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나의 염려는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