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아버지가 따로 없다

by 강이랑


햇살이 작열했다. 들깨 모종이 많기도 하다. 이 많은 들깨 모종을 같은 크기끼리 나눠 밭에 옮겨 심는 일을 했다. 뙤약볕이 내리쪼이고 숨은 턱턱 막혔다. 아버지가 모셔온 팔순 어르신은 손도 빠르고 거침이 없으시다. 나도 어렸을 때는 농사일을 꽤나 했지만 뙤약볕 아래 낮의 들깨 모종 옮겨심기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팔순 어르신은 우리 엄마가 살아계실 때도 농사일을 거들러 온 적이 있다며 엄마의 죽음을 애도해 주셨다. 아버지와는 복지관에서 만나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그러신다. 남편을 잃고 아들내외와 함께 산다며 가족들은 말리지만 아직 일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르신께 요령을 물어물어 가며 호미로 땅을 파 들깨 모종을 심었다. 모종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심어야 할 밭은 넓기만 하다.


아버지는 내 작고 가벼운 양산을 이분한테 드린걸까? 나는 뙤약볕 아래 질퍽질퍽한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스치듯 생각했다.

"저희 아버진 바깥에서는 어떠신가요?"하고 묻자, "본인이 뭐든 다 안다고 그러죠."대답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훤하다.


어르신은 우리 엄마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아버지는 일을 도와줄 생각을 않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어디론가 왔다갔다 하더니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어르신과 나는 한창 자란 옥수수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옥수수를 많이도 심었다. 엄마는 옥수수를 특히 즐겨 드셨다. 옥수수가 영글어도 이제 더 이상 엄마는 없다.


어르신과 함께 들깨 모종을 심고 있자 마을 어르신들이 들깨 모종을 심는 간격에 대해 훈수를 들거나 엄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엄마가 아버지와 달리 평판이 좋은 것 감사했다.


오빠와 큰언니가 전화를 한다. 두 분은 나와의 전화 통화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한 느낌이었다. 읍내에 사는 큰언니가 튀김과 치킨, 맥주를 사 왔다. 어르신은 함께 들어가서 쉬자고 해도 우리 동네에 사는 아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여 나는 큰언니가 사 온 맥주를 마시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일은 하나도 거들지 않고 이렇게 심어라 저렇게 심어라 잔소리만 해대고는 혼자서 음식을 드시고 있다. 큰언니는 아버지가 드실 찌개 요리를 하느라고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햇빛은 절정에 달했는데 아버지는 다시 얼른 일하라고 잔소리를 해댄다. 나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 지금은 안된다고 해도 얼른 일하라고 소리소리를 친다. 그러자 내가 그럼 아버지도 함께 일 하세요 했더니 자기는 무릎이 좋지 않아 할 수 없다며 어서 일하라고 재촉한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의붓아버지가 따로 없다.


팔순 어르신도 모처럼 아는 분을 만나 담소를 나누던 참이었는데 방해를 받아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가 의붓아버지나 마찬가지라고 하니깐 정말 꼭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신다.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들깨 모종을 마쳤다. 그래도 끝나긴 끝나는구나. 몇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6시 들깨 모종을 끝으로 더이상 일하는 걸 포기한 나와 달리 어르신을 한 시간을 더 일하고 마무리하셨다. 이만으로도 경외심이 들었다. 아버지는 그러는 동안에도 어르신 옆에서 한시도 가만히 잊지 않고 무슨 말인가를 하셨다.


나는 옛이야기에서 의붓아버지에게 구박받는 딸이 된 기분이었지만 어르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들깨 모종을 밭에 다 옮겨 심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전화 통화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한 언니 오빠와 달리 엄마 장례식 다음날 나와 함께 들깨 모종을 심은 이 팔순 어르신이 머지않아 고향집으로 들어오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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