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여러 아픔 속에서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두 분이 겪은 가장 큰 아픔은 자식을 잃은 아픔이 아닐까.
내게는 작은 오빠이고, 부모님께는 작은 아들인 오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방죽에서 헤엄치며 놀다가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엄마는 끝내 작은 아들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거부한 채 떠나고 마셨다.
아버지 또한 작은 아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거부했다. 이제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거부하신다.
누구나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마는 일이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작은 오빠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다가 온몸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 그 후로 두 번 다시는 오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작은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을 때나 엄마의 죽음에 대면했을 때의 아버지를 보았을 때 앞으로도 엄마에 대한 그 어떤 이야기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한테 엄마는 아내이자 동반자이자 친구이며 또 하나의 어머니 같은 존재였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말이 많았고 엄마는 잘 들어주었다. 아버지의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다 들어주셨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아버지의 심리상담사이기도 했다. 그것도 매일매일을.
어머니가 허리를 다쳐 고향집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 알았다. 아버지한테는 엄마가 있으면 되고, 엄마한테는 아버지가 있으면 되겠다는 것을. 살아온 세월도 가치관도 삶의 방식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두 사람은 같았다.
엄마의 병이 깊어지며 엄마의 부재를 감지한 아버지는 엄마의 뜻에 맞추려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엄마는 병색이 짙어지며 그간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아버지께 토로하기도 했다. 한때 아버지는 그런 엄마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다. 그때 엄마는 맘껏 말할 수 있었을까. 엄마는 그 누구도 아닌 아버지와 말하고, 아버지한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이 "누나, 어르신이 엄마처럼 마음씨도 좋고 엄마를 닮았어." 한다. 아버지는 엄마의 부재를 깨닫자마자 아마도 여기서의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지금 일상을 공유하는 현존하는 또 다른 존재가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허심탄회하게 엄마를 말하고 싶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엄마에 대한 것 말고 그 어떤 중요한 공통 대화거리가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엄마와 누구보다도 오래 삶을 함께 한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거부한다.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지금 말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를 거부하신다.
아버지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엄마의 죽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서는 엄마와의 동일시에서 오는 죽음에 대한 거부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 내면은 불안과 아픔으로 가득할 것이다.
거부하고 막아보려 애쓰면 애쓸수록, 드러내고 말해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아버지나 나 모두에게서, 어찌하지 못하는 깊은 슬픔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