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부르는 <막걸리 한 잔>

by 강이랑


동생은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신다. 그런 동생이 어느 날은 통화 중에 <막걸리 한 잔>을 불러주었다.


동생이 외워서 전곡을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막걸리 한 잔>, <보약 같은 친구>, <소양강 처녀> 세 곡이다. <막걸리 한 잔>은 유튜브를 보면서 두 달 걸려 외웠다고 한다.


동생은 아마도 어느 경연 프로그램에 나온 영탁 가수가 부른 절절한 버전을 참고로 노래연습을 했을 것이다. 예전에 트로트 경연 방송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방송에서 흘러들었을 때만 해도 아버지와 아들의 애한이 담긴 노래라고만 생각했었다. 동생은 훨씬 경쾌하고 담백하게 불렀는데, 막내아들이기도 한 동생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복잡한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노래를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원곡인 강진 가수의 노래도 들어보고 가사도 살펴보았다. 막내아들을 장가보내는 화자인 아버지가 신의 어린 아들이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던 막걸리 한 잔과 자신의 아버지가 따라주던 막걸리 한 잔을 교차로 추억하고 있는 듯 이해되었다.


막내아들을 장가보내게 된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막걸리'를 소환하는데, 역으로 내게 '막걸리'와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라는 노랫말처럼, 쟁기를 끌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형제자매들 모두 어린시절에 무던히 막걸리를 사다 날랐다. 나도 수십 번 막걸리를 사러 갔는데, 혼자 막걸리를 받 오고가던 논두렁에는 뱀이 우글거려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다가 도중에 넘어져 쏟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막걸리가 넘쳐 급한 마음에 마셔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아버지는 막걸리보다 본인이 손수 담근 몸에 좋은 귀한 담금주 즐겨 드신다.


막걸리는 내가 마신다. 엄마 장례식을 마치고 고향에서의 사흘간은 막걸리 덕분에 지낼 수 있었다. 나는 대학시절부터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맥주는 즐겨 마지만 막걸리는 즐겨 마시지 않았다. 아니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 장례식 이후에 막걸리 맛을 알아버리고 말았다.


강진 가수의 <막걸리 한 잔>에는 화자인 아버지의 아들 사랑과 아버지 사랑이 담겨있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날처럼 막걸리 한 잔"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내게 '막걸리 한 잔'은 "오늘따라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날처럼 막걸리 한 잔"으로 치환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의지를 했지만 의존은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막걸리를 의존하지는 않을 거라는 건 안다.


동생이 불러준 <막걸리 한 잔>을 떠올리며 동생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서 과거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버지와 막걸리, 이윽고 어느새 나와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스스로 놀란다. 어머니의 49제 때 아버지는 본인이 사 온 막걸리를 엄마 무덤가에 뿌렸다. 비에 젖은 축축한 무덤가는 온통 막걸리 냄새로 진동했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와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버지께 막걸리를 한 잔 따라드리고 나도 한 잔 받아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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