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아버지가 오만 원 주셨어

by 강이랑


남동생하고 통화 중이었다. 시간은 9시 경이었다.

남동생은 아침 6시에 매일같이 가는 복지관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꿈꾼 이야기, 날 있었던 이야기,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한 이야기 등을 한참 동안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무 말이 없다.

한참 후에, "누나, 아버지가 오만 원 주고 가셨어." 한다.

참 별일이다. 아버지가 복지관에 도착해 동생에게 오만 원을 건네줬다는 것이다.


사정은 이러했다.


며칠 전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전화를 해 짐을 챙겨 내려오라고 했단다. 짐을 챙겨 내려가자 어르신이 다시 원집으로 가 무섭고 외롭다며 남동생에게 한동안 시골에서 같이 있자고 그랬단다.


"밤길이 캄캄해서 진짜 무서웠당게."

시골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

"어르신은 왜 다시 가셨대?"

"몰라. 아예 가신거래."

"아예 가셨다고? 다시는 안 오신대? 그래서 너랑 살겠다고 그러신 거래?"

"응. 잠도 다 달아나고 추워서 그날밤은 한숨도 못 잤당게."

동생은 잠을 설치면 하루 종일 영향을 받는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나, 근디 다시 어르신이 오셨어."

"아예 가셨다며?"

"읍내 목욕 갔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어르신이 쓰윽 나오시는 거야. 깜짝 놀랐당게."

아버지와 어르신은 젊었을 때 해보지 못한 연애 감정을 지금 다시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아니면 그냥 충동적인 것일까?


"어르신이 다시 여기서 살겠다고 해서 아들이 태워다 줬대. 근디 누나, 어르신 불쌍해."

"왜?"

"아들이 어르신 앞으로 나온 75만 원을 자기가 70만 원 갖고, 어르신한테는 5만 원만 주었대."

"세상에나."

"어르신이 아버지 집에 있을라고 하지 아들집에는 안 갈라고 해."

"근데 왜 가셨대?"

"몰라. 아버지하고 죽을 때까지 같이 있고 싶다고 해."


어느 집이나 깊게 들여다보면 저마다 사정이 있다. 자린고비 아버지여도 어르신은 원집에서 아들내외와 사시는 것보다 아버지랑 지내는 것이 나은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어르신 쪽에서도 차라리 아버지와의 생활을 원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 누구에게나 타인이 헤아릴 수 없는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어르신과 함께 노년기를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오라 가라 하며 단잠을 깨운 게 미안했던 것일까. 캄캄한 밤중에 싫은 내색 하나 않고 묵묵히 자신을 따라와 준 아들이 고마웠던 것일까. 다음 날 복지관에 도착해 동생에게 오만 원을 건넨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나는 남동생과 올케가 집안일을 하러 왔을 때 많고 적든 간에 그에 합당한 금액을 동생 내외에게 지불하도록 아버지한테 권했었다. 아버지는 아마 내 말 따위는 콧방귀도 안 뀌었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이번엔 동생에게 선뜻 오만 원을 내미셨다.

아버지와 어르신 때문에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남동생의 노고를 생각하면 오만 원이 뭐 대순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버지가 동생에게 건넨 오만 원을 통해 얼마나 동생이 두 사람 사이에서 고충을 겪고 있는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동생이 언젠가 간밤에 꾸었다며 들려준 꿈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미로 기둥을 넘어가라고 제안했어. 너무 높아서 진짜 힘들었는데 넘었어.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했어. 왜? 그 높은 기둥을 넘었으니까.


동생의 꿈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 이야기를 연상시켰다.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아들이 얼마나 자신만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이번에 아버지가 동생에게 건넨 오만 원은 큰 기대는 안되지만 일말의 기대를 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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