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살아있어서

by 강이랑


엄마가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고 몸져누워 계실 때에 나는 5박 6일이라든가 6박 7일로 고향집에 내려가곤 했었다.


내려가 있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아버지 때문에 뜨악하는 상황을 맞이했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무의식이 살아있어서,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상징적인 꿈을 자주 꾸셨다. 대부분의 꿈은 그냥 지나치시다가도 자신의 무의식을 심하게 건드리는 꿈을 꾼 날이면 새벽부터 오늘 꿈에는 구신이 나왔다느니, 이상한 꿈을 꾸었다며 중얼중얼하신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에게 어디 꿈 얘기를 해보시라고 한다. 그러면 아버지는 꿈을 내놓으시고 새벽부터 아버지와 나는 꿈 투사를 하며 토론을 한다. 드디어 아버지와 나 사이에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소통다운 소통이 이루어진다.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가 병원치료를 받을 때였다. 아침 8시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병원이라며 전화를 받으신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새 세 마리가 그물에 걸려서 날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며 꿈 이야기를 해주신다. 전화기 너머로 나의 꿈 투사가 들어간다.


"어머니가 허리뼈 두 군데에다 이번에 갈비뼈까지 세 군데이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새라면 그물에 갇힌 새가 어찌 혼자 빠져나가겠습니까. 그물 안에 갇힌 새는 그 그물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 밖에서 그 그물을 걷어내야 하지 않습니까." 하며 "지금 당장 옆에는 아버지밖에 안 계시니, 어머니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그 그물을 걷어내야지, 누가 걷어내야." 하신다.

하지만 며칠 지나 다시 아버지가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 갈비뼈가 한 개가 아닌 몇 개나 더 부러지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입원하신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왜 조심을 안 했냐며 화를 내서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더니 어머니가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혼자 집에 계시는 아버지는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시고, 오래된 음식물도 다 버리고, 저녁을 드시기 전에 전화를 주신 것이다.


그때 아버지와 나는 꿈 투사를 나누며 서로 슬픔을 공유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물은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상일뿐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버지에 대한 상 또한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내가 만들어낸 아버지 이미지에 나 스스로 갇혀 있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왠지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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