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네 자매다. 고향에 큰언니가 있고 동생들 셋은 서울 근교에 살고 있다.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여태껏 네 자매만 따로 함께 모인다거나 같이 여행을 간다거나 카톡 단톡방을 만들어 따로 소통을 한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장 큰 변화는 자매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네 자매의 모임은 엄마가 자매들에게 주고 간 선물이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알았다. 얼마나 자매들 손발이 잘 맞는지를, 얼마나 합심해서 엄마를 캐어하려 하는지를.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성심성의를 다 했다. 엄마가 위중한 것을 보며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자매가 먼저 각성을 한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뭉친 자매는 그 후 몇 차례나 모임을 갖고 함께 엄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오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모두 엄마 덕분이다.
자매가 뭉치는 데 아버지도 한몫을 했다. 아버지는 가문을 잇는 성씨와 자신의 직계 핏줄을 누구보다도 중시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에게 있어 딸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 함께 하는 존재가 아닌 밖으로 떠날 존재이다. 이는 아버지의 고루함 탓만이 아닌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정신과 한계이기도 하다.
고향에 사는 큰언니는 주기적으로 부모님을 찾아가 음식물을 챙겨 드리고 말동무가 되어 드렸다. 안정된 직업을 가졌던 작은 언니의 경우는 부모님을 위해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용돈을 드리고 정기적으로 찾아뵈며 자식으로서 할 도리를 다 했지만 엄마일로 중요한 순간에는 출가외인이라며 배척당하기까지 했다.
아버지의 인정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교사가 된 작은 언니 또한 타고난 성실함과 부지런함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의 지도로 한글을 떼고 간 덕분에도 공부를 잘했다. 학업, 생활, 성취, 인성 면에서 작은 언니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다. 이런 아버지의 인정은 작은 언니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하지만 작은 언니는 엄마의 딸이기도 하다. 성품도 가장 엄마를 닮았다. 그런 언니이기 때문이었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장 마음에 많은 상흔을 입은 사람은 어쩌면 작은 언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큰언니와 셋째 언니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장 아버지를 살뜰히 챙기는 딸들이다. 큰언니는 아빠가 경쟁심을 가질 만큼 사업가 기질이 있고, 자신의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아버지를 닮은 큰언니는 아버지만큼이나 배포도 크고 정도 많지만 내면은 여리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심적으로 의지하고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존재는 큰언니다.
가장 여성스럽고 내면이 한없이 여린 셋째 언니도 지금의 아버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는 딸이다. 정기적으로 전화를 하여 아버지의 말을 들어주고 있다. 어머니가 뇌경색이 와서 긴급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술에 취해 두려움에 떨며 모든 딸들에게 수십 차례 전화를 걸었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엄마가 입원한 병원을 향해 내려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수십 번 아버지는 전화를 했다. 나는 내일부터 엄마의 병상을 지킬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해 앞을 보고 나아가고 있는데 술주정을 하듯 자신의 두려움만 말하는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 했다. 그래서 임계점에 부딪힌 나는 "저는 이제 좀 눈을 붙이고 새벽같이 일어나 어머니 병원에 가야 한다."고 칼같이 끊었었다. 하지만 셋째 언니는 두세 시까지도 그런 아버지의 주정을 다 받아주었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보다는 엄마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인정보다는 엄마의 인정을 바라는 딸이다. 하지만 엄마 또한 내가 가장 인정받고 싶어 했던 일의 성취 면에서는 내가 바라는 인정의 말을 해주시지는 않았다. 그래도 엄마와는 마지막 몇 년 동안 서로 사랑의 말을 주고받아 그걸로 족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고향집에 가도 아버지의 말은 나를 뒤흔들지 않았지만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영혼을 흔들었다. 한때 기가 센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엄마가 같이 합세해 내리꽂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 나는 아버지에게 따뜻한 전화를 거는 것도 아니고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대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때다 싶을 때는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눈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인지하고 딛고 일어서려 했지만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닮은 사람은 나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좋은 면보다는 그림자를 너무 의식해 그로 인해 사회속에서 만나는 존재에게 아버지의 그림자를 투사하거나, 그림자를 직시했다고 생각했지만 직시가 아닌 봉인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래도 저마다의 방식과 저마다의 거리감으로 아버지와 대면하는 자매들을 보며, 엄마가 위독할 때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던 딸들의 모습이 여기서도 발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는 묘한 안심과 감사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