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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Dec 15. 2023

사회라는 현실에 맞서다

고정순, 《가드를 올리고》(만만한책방, 2017)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고정순의 가드를 올리고 


고정순의 그림책 《가드를 올리고》는 글 텍스트와 그림 텍스트가 따로따로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 텍스트에서는 산을 오르면서 직면하는 문제가 그려지고 그림 텍스트에서는 링에 오른 권투 선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빨간 권투 글러브를 낀 선수가 힘차게 잽을 날려보지만 검정 글러브를 낀 다부진 상대 선수는 가볍게 피한다. 산을 오르다가 “커다란 바위를 만났”을 때처럼 상대 선수의 강렬한 어퍼컷이 턱을 강타한다. ‘웅덩이’와 ‘가파른 언덕’을 지나듯 연달아 검정 글러브를 낀 선수의 강렬한 펀치가 작렬하고 그림책 표지의 주인공인 빨간 글러브 선수는 그로기 상태가 되어 쓰러진다.


“처음에는 단박에 오를 것 같았”던 빨간 글러브의 권투 선수는 “다른 길로 갈까? 그만 내려갈까?”허우적대다가 표지의 비틀거리는 제목 글자처럼 내적 파동 속에서 비로소 가드를 올린다.  어쩌면 너무 의욕만 앞섰지, 공격에 대응하거나 방어하는 자세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검정 글러브의 상대 선수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만나는 어떤 대상이거나, 지금 준비 중인 시험이거나, 새로 시작하는 사업일 수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상황을 대면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만반의 준비 속에서 임했다 해도 종종 예기치 못한 상황에 나가떨어지고, 코너에 몰리고, 강렬한 펀치를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된다.  


《가드를 올리고》는 인생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어떤 문제와 도전을 권투로 비유해 은유적으로 풀어가는데, 작은 도서관 그림책 읽어주기 시간에 초등학교 5, 6학년 남자 학생들이 보인 관심과 반응은 놀라웠다. 학생들이 직면한 내면 현실 또한 이와 같은 것일까? 아이들은 그림 하나하나를 다시 보며 본인들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올라갈 수 있을까?
( 퍼벅!)
 더 이상 한 걸음도 못 걷겠어.
( 퍼버벅!)
 길을 잃었나 봐.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산 위에는 정말 바람이 불까? (《가드를 올리고》중에서)


권투 선수가 얻어맞는 장면에서 그림 텍스트는 이미지에서만이  아닌 글 텍스트 속으로 개입하며, 맨몸의 복서가 직면한 고난에 찬 삶에 생생한 현실감을 더한다.


평평한 길거리를 걸을 때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심지어 산을 오르려 하는데 아무 일이 없겠는가?


빨간 글러브 같은 에너지, 불타는 의욕이 있고, 붙잡고 일어설 두 가닥의 줄이 있고, 스스로를 가드(방어, 보호)할 줄 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단련해 줄 상대가 있는 링 위야 말로 우리가 직면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적 대미지와 처참한 몰골로 나가떨어졌다가, 넘어지고 넘어져도 “아무도 없는 모퉁이에서” 다시 일어서는 빨간 글러브 권투 선수처럼 툴툴 털고 일어나,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정순의 그림책 가드를 올리고》는  사회라고 하는 링 위에 올라 현실을 대면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응원가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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