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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Aug 08. 2018

<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일본동화읽기➂>

      엄마와 딸의 창조적이고 건강한 삶을 위하여
『별로 돌아간 소녀』(스에요시 아키코 글, 문수지 그림, 이경옥 옮김, 사계절, 2008)



1. 엄마라는 이름의 타자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 빛이고, 힘이고, 가끔은 버겁기도 하다. 그리고 어떨 때는 같은 여성으로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안쓰러울 때도 있으며,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사랑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 대면했을 때의 나의 엄마는 내가 새롭게 알아가야 할 또 다른 존재로서의 ‘타자’이기도 하다.
   『별로 돌아간 소녀』(스에요시 아키코 글, 문수지 그림, 이경옥 옮김, 사계절, 2008)는 초등학교 6학년 마미코라는 소녀와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판타지 동화이다.



 

  마미코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마미코의 엄마는 화장품 회사 홍보부에서 일하는 회사원으로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12살 생일을 맞이한 마미코는 엄마에게 최신 유행하는 멋진 코트를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 친구 히로코가 산 코트처럼 허리가 잘록하고 끝단이 넓게 퍼지는 멋진 디자인의 코트일 것이다. 엄마에게 잡지도 여러 번 보여 주었고 그림으로 정확하게 그려 주기까지 했으니 틀림없다. 마미코는 예쁜 포장지를 벗기고 상자를 열어 새코트를 거울에 비춰 보며 살며시 팔을 꿰어 보는 자기 모습을 그려 보았다.
“나도 조금은 귀엽게 보이겠지.”
마미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어서 엄마가 왔으면.” (『별로 돌아간 소녀』, p8)


  외투를 통해 타인에게 비추어지고자 하는 소녀의 욕망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마미코는 요즘 유행하는 최신식 코트를 입고 세상 밖 사람들에게 자기 모습이 예쁘고, 귀엽게 보이길 욕망한다. 그리고 드디어 엄마한테 생일 선물을 받는다! 


“네가 갖고 싶어하던 코트하고는 좀 다르지만 이건 엄마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코트야. 추억이 스며 있는 옷이지. 그래서 쭉 갖고 있었는데, 마미코가 이런 색 코트를 갖고 싶다고 해서 생각이 나더구나.”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허리가 잘록하고 디자인이 화려한 코트라고 말한 기억은 나는데, 이런 색을 갖고 싶다는 말도 했었나?’
코트를 처음 본 순간 마미코는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내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별로 돌아간 소녀』, p18)
         


  마미코의 예상과는 달리 엄마가 자신의 추억이 담긴 외투를 건네는 이 모습에서 바깥세상, 즉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엄마 자신의 모습을 딸에게 투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외투에 대한 딸과 엄마의 다른 시선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마미코의 특성은 엄마와 다르다. 자부심이 강하고,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와 기질과 성향도 달라 보인다. 마미코는 엄마에 대해 “회사에서 일하는 엄마 모습은 분명 아주 멋질 것이다.(12p)”라고 인정하면서도, 딸에게 소홀하고 약속 시간을 자주 어기는 엄마는 싫어한다.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회사에서 남녀 모두와 경쟁하며 지지 않고 제 역량을 발휘하며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딸에게도 똑같이 욕망한다. 한편으론 엄마는 지금의 ‘딸’의 특성과 욕망을 직시하기보다는 자신의 소녀 시절에 갇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따라서 엄마의 코트는 엄마가 집착하고 있거나, 버리지 못하는 그 어떤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엄마가 마미코에게 자신의 오래된 외투를 건네는 이 장면은 해소되지 못한, 해갈되지 못한 그 어떤 감정을 마미코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2. 외투를 입고, 소녀 시절의 엄마와 조우하다

  마미코는 추운 겨울 어느 날, 달리 입을 외투가 없자 엄마가 준 ‘엄마의 유서 깊은 구식 코트’를 입는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오래된 두 장의 회수권으로 버스에 올라타 사춘기 소녀 시절의 엄마, 소녀 ‘쿄코’와 조우한다.   


누가 기둥문으로 들어와 가로질러 가는 게 언뜻 보였다. 마미코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본당 앞까지 걸어가더니 돌계단에 앉아 두 무릎을 껴안은 자세로 추운 듯이 웅크려 앉았다.(…)
여자아이의 두 눈은 울고 난 뒤처럼 빨개져 있었다. 그 눈으로 마미코의 눈빛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둥문 쪽으로 가던 마미코의 발이 저도 모르게 여자아이 쪽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여자아이의 눈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별로 돌아간 소녀』, p29-30)
     


  마미코가 처음으로 본 소녀 시절의 엄마, 쿄코는 울고 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빠와 단둘이 사는 쿄코는 축제에 가고 싶어 울고 있는 것이다. 나이도 비슷하고, 처지도 비슷한 두 소녀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아직 마미코는 이 소녀가 자신의 엄마인 것을 모른다. 엄마 쿄코가 마미코에게 “저기, 너 우리 집에 안 갈래? 어차피 나 혼자 있거든. 같이 놀자(39p)”고하지만 이를 거절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마미코가 엄마에게 코트에 얽힌 추억을 물어보자 엄마는 외할머니가 사준 코트라고 말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코트 한 벌에 외할머니와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얽혀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의 분석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는『판타지 책을 읽는다 심리학자가 읽어 주는 판타지 문학』(가와이 하야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6)에서 ‘영혼’에 대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몸과 마음으로 나누어 생각할 때 어느 쪽에도 포함할 수 없는 것, 또는 몸과 마음을 통합하여 인간이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p27)”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국의 작가 캐더린 스터가 쓴 판타지 『매리앤의 꿈』을 들어 아래와 같이 말한다.    


몸과 마음, 외부세계와 내면세계, 삶과 죽음 등 사람들이 명확하게 구분 짓는 세계는 의외로 서로 뒤섞여 있어서 원인과 결과를 단순히 대입시키면 반드시 착오가 생긴다. 영혼은 인과 관계를 초월한 영역이며 거기에서는 인간이 구분 지어 놓은 모든 것들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인간은 때로 영혼과 깊이 접촉해야 한다. 마리안느는 열 번째 생일을 계기로 그것을 경험했다. 심리적 통로에서는 고뇌가,  육체적 통로에서는 병이 영혼과 접촉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매우 많다.(『판타지 책을 읽는다 심리학자가 읽어 주는 판타지 문학』, p45)  

  

  『별로 돌아간 소녀』의 마미코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오는 무의식적인 ‘고뇌’가 심리적으로 작용하여 엄마의 어린 시절 영혼인 쿄코와 조우하게 하고, 할머니의 영혼과도 조우하게끔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3. 두 소녀에게 엄마란? 

  딸과 엄마는 영혼의 접촉을 체험하게 되지만 마미코는 자신의 속마음까지 현실의 엄마에게 털어놓지는 않는다. 그런 엄마가 결혼할 거라는 말과 아빠와 헤어진 이유 등을 듣게 된다.  

   

이렇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아빠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이지만, 신기하게도 마미코는 마음이 담담했다. 엄마가 말한 것 외에는 궁금한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별로 돌아간 소녀』, p74)


  마미코는 본디 성격이 ‘쿨’한 아이처럼 보인다. 엄마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쿨하게 “엄마, 이번에는 잘해 봐.(75p)”라고 응원을 보내고, 아빠에 대한 궁금증이나 애착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새아빠가 될 사람과 새해 첫인사를 앞둔 어느 날 마미코는 낡은 코트에 들어있는 회수권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쿄코를 찾아간다. 쿄코는 아기를 업고 동네 아이들과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쿄코는 자기 엄마가 다른 남자와 집을 나갔다는 것, 그 사실을 주변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데 자기만 몰랐다는 것을 마미코에게 털어놓는다. 이러한 쿄코의 고백을 통해 마미코는 현실의 엄마에게는 미처 내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속마음과 대면하게 된다.


마미코는 지금 쿄코의 이야기가 자기 일처럼 여겨졌다.
“엄마! 아, 엄마! 지금처럼요, 언제까지나 나만의 엄마로만 있어 줘요!”
마미코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래, 이게 진짜 내 마음이야. 착한 아이 흉내는 이제 그만 두자. 오늘 집에 돌아가면 엄마에게 말하는 거야. 엄마가 결혼하는 건 싫다고.” (『별로 돌아간 소녀』, p96)  


  지금까지 마미코는 엄마에 대한 애착을 크게 드러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장면을 통해 마미코가 엄마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엄마에 대한 간절함은 마미코만이 아닌 소녀 시절의 엄마 쿄코 또한 자신의 엄마에게 갖고 있던 간절함이기도 했다. 집을 나가 새로운 살림을 차린 쿄코의 엄마는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쿄코에게 코트를 사 입으라며 돈을 보낸다. 아빠가 서랍 속에 넣어둔 그 돈을 발견한 쿄코는 지금 마미코가 입고 있는 코트와 똑같은 것을 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쿄코의 진짜 속마음은 집 나간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럼 이 돈 갖다 놓고 오면 함께 가 줄래? 난……너무 보고 싶어, 너무. 한 번 만나기만 하면 돼.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아.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같이 가 줘. 부탁이야. 아니, 오늘이 아니라도 괜찮아. 내일이라도, 모레라도 괜찮아.” 
쿄코는 아주 간절했다. 마미코 앞에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내 보이는 걸 상관하지 않았다.
‘이렇게 간절한 일이 나한테도 있을까? 아니, 나는 도저히 이렇게는 될 수 없을 거야.’
쿄코를 바라보면서 마미코는 찡하게 가슴이 아파왔다.
“간다면 오늘밖에 없어.” (『별로 돌아간 소녀』, p96)
 


  여기서 우리는 엄마의 집착 또한 알게 된다. 엄마에게 있어 오래된 코트는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인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이 외할머니에 대한 열두 살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꾸려가는 당찬 여성이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의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 애도 의식에 동참한 두 소녀

  교코는 마미코에게 “미안해. 같이 가자고 해서. 사실 난 아직 혼자서 버스를 타본 적이 없거든. 아까 그 봉투 발견한 뒤로 몇 번이나 가 보려고 생각했지만……혼자 가는 게 두려웠어. 다행이야. 네가 같이 가 줘서.(101p)”라고 고백한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열두 살 소녀 때의 마미코의 엄마 쿄코가 당시 처했을 상황, 두려움, 그리움, 아픔 등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소녀는 한 소녀에게는 엄마, 한 소녀에게는 외할머니를 찾아 같이 버스에 오른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두 소녀는 자신들이 찾은 ‘여성’=엄마(외할머니)를 발견한 듯하지만 서로 맞딱뜨리지는 못한다.   

 

결국 쿄코는 끝까지 그 사람이 엄마라고 말하지 않았다.  (…)
이윽고 입을 연 것은 버스를 타고 나서였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그렇지만 오길 잘한 것 같아. 왠지 마음이 개운해.”
“그래, 다행이다. 나는 아까 네가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 그냥 돌아갈걸 하고 후회하던 참이야.”
“아니야, 이걸로 됐어. 그 때 돌아갔으면 나는 또다시 왔을 거야. 엄마를 만날 때까지 몇 번이나…….”
“엄마가 밉니?”
그 질문에 쿄코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여하튼 미워. 용서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다들 말하는 것처럼 어른이 되면 틀림없이 엄마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야.(…)” (『별로 돌아간 소녀』, p129-130)
  


  마미코의 엄마 쿄코는 엄마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워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이러한 엄마에 대한 마음은 집착으로 남아있어 인생의 어느 기점에서 한 번은 반드시 풀어헤쳐질 필요가 있음을 이 장면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따라서 마미코가 쿄코의 엄마이자 자신의 외할머니를 찾아 헤매고 방황하는 이 장면은 어쩌면 필요한 어떤 인생의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이 과정을 함께 해준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로 이 장면은 마미코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를 떠나보내기 위한 애도의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이 장면을 통해 결국 엄마가 자신의 애도 의식에 자신의 딸인 마미코를 불러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로 돌아온 중학생 마미코의 모습을 통해 소녀 시절의 엄마를 만나러 간 것은 마미코 쪽이기도 했음을 알게 된다.


마미코는 구립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학원에 다녔지만 전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은 사립학교 시험에 합격할 리가 없었다. 엄마는 좀더 일찍부터 학원에 다녔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정작 마미코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도 남의 일 같기만 했다.
히로코는 전부터 입버릇처럼 말하던 유명 사립 중학교에 진학했다. 멋지게 시험에 붙었다.
이렇게 해서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헤어졌다. 이제 거의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히로코는 같은 중학교에 갈 수 없게 된 것을 슬퍼했지만 마미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분에 맞는 학교에서 느긋하게 있는 편이 훨씬 좋았다. (『별로 돌아간 소녀』, p146)
  


  마미코는 현실 속에서 히로코라고 하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히로코는 마미코가 같은 학원을 다니게 되었을 때 “우와, 라이벌이 한 명 더 늘었네!(24p)”란 반응을 보인다거나, 본인이 감기에 걸려 학원에 결석하게 되자 “너만 먼저 진도 나가면 싫은데. 너도 같이 감기 걸리면 좋을 텐데.(24p)”라고 말하는 등 그야말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 논리 속에 사로잡혀 있다. 마미코는  현실 세계에서 진정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 이러한 외톨이 마미코의 마음이 역시 엄마의 어린 시절의 영혼 쿄코를 불러들이고 그 간절함이 서로를 만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애도-대상관계 정신분석의 관점-』(수잔 캐벌러-애들러, 이재훈 옮김,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9)에서 수잔 캐벌러-애들러는 심리적으로 고착하고 고뇌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닌 “발달적 애도는 부모와의 분리를 이루어내면서 심리적 자기 구조 안의 다양한 파편들과 조각들이 치유되는 자기-통합 과정이다.(149p)”라고 말한다. 또한 이우경은 『아버지의 딸』(이우경, 휴 출판사, 2015)이라는 책에서 애도 상담가 머레이 파크스의 말을 빌러 애도는 “현실 인식의 과정”이라고 말하며, “이미 일어난 일을 심리 내면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애도 작업이 완결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애도를 해야 하고, 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투자되는 일이다.(p279-280)”라고 밝히고 있다.  
  『별로 돌아간 소녀』에서 엄마와 마미코의 앞으로 펼쳐질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이러한 애도의 과정은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미코에게는 과거, 그리고 쿄코에게는 미래의 별에서 온 소녀와의 시간 여행 속에서의 모습이다. 현실의 엄마와 딸은 어떠할까.
 
5. 서로 마주한 엄마와 딸

  마미코는 엄마가 어쩌면 쿄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지만, “쿄코는 쿄코, 엄마는 엄마, 마미코 마음속에는 두 사람이 따로따로 살고 있다. 억지로 연결시키고 싶지 않았다.(151p)”라며 “‘그대로, 그대로, 살짝 뚜껑을 덮는 거야. 그리고 이제 이런 이상한, 바보 같은 일은 잊어버리는 거야.’(151p)”라며 기억 속에 묻어두려고 한다.
  그러다 미닫이 안에 있던 엄마의 앨범과 오래된 사진을 보게 되고, 그 속에서 새로 산 코트를 입고 자신의 엄마와 함께 있는 소녀 쿄코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마미코는 그 모습을 엄마에게 들킨다. 마미코는 지금까지 버스를 타고 쿄코를 만나게 된 일과 그동안 겪은 일들을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안 믿는 거야? 엄마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아냐. 모두 사실이야.”
엄마가 한마디라도 하면 마미코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읽었지? 엄마 일기…… 그 미닫이 안에 있었을 거야.”
엄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일기라니, 엄마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일기라니? 몰라. 내 말 다 진짜야.”
“뭘 바스락거리나 했더니…… . 남의 일기를 몰래 읽는 건 좋지 않아.”
(…)
“뭐라고? 그 일기는 엄마의 단 하나뿐인 재산이야. 아무한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어. 단순한 대학 노트가 아니니까. 그걸 몰래 훔쳐보기만 한 거라면 몰라도 이렇게 이야기까지 지어서 엄마를 놀리다니 용서할 수 없어. 명심해 둬. 절대 용서 못 해.”
그 곳에 있는 사람은 마미코의 말 따위는 들으려 하지 않는, 그저 자기 멋대로인 어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결국 엄마는 마미코를 믿어 주지 않았다. 언제나 엄마의 상황, 엄마의 일만 중요했다.

(『별로 돌아간 소녀』, p159-160)

 

  엄마의 과거 속에서 마미코가 조우한 열두 살 소녀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애도하며 떠나보내는 듯했지만, 현실 세계 속의 엄마는 여전히 고착된 채이다. 엄마는 자신의 비밀을 딸에게 들켰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며 마미코의 뺨을 때린다. 마미코는 엄마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애정 표현이 서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이제 끝이야. 저런 사람, 엄마도 아니야.(161p)”라며 절망하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 엄마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무언가 아직도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과거 시간 여행에서처럼, 열두 살 쿄코처럼, 엄마가 자신을 풀어헤쳐 해방되었으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만만치 않는 현실과 마찬가지로 엄마와 딸 관계도 참으로 만만치가 않다는 것을 위의 장면을 통해 알게 된다. 마미코는 이 장면에서 자신이 생각한 엄마의 모습이 아닌 또 다른 타자로서의, 자신이 잘 모르는 한 여성으로서의 엄마의 모습과 대면한다.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처럼, 이 동화 속 이야기 또한 충격적인 그 후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와 딸이 서로 마주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고도 또 어렵다는 것을 외할머니가 맞닥뜨리는 마지막 상황, 죽을 고비를 맞이하는 마미코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가 준 코트는 엄마 자신의 버려야 할 고착된 과거와 현실의 허울을 의미한다.

                          



  심리 상담 연구자인 베레나 카스트는 저서 『애도-상실과 마주하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가기』(베레나 카스트, 채기화, 궁리, 2007)에서 “우리는 죽음을 매우 다양하게 체험한다. 상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실망‧실패‧이별‧박탈‧정점‧지속에 대한 열망과 많은 것들이 늘 죽음과 관련된다.(…) 삶은 본질적으로 이별의 연속이고, 어떤 종류의 이별이든 우리는 그것을 견디기 위해 애도할 수 있어야 하며, 거듭되는 헤어짐과 친숙해져야만 한다.(p65)”라고 말한다. 

  여기서 베레나 카스트가 말하는 죽음의 비유는 “우리는 삶의 단계, 부모, 자신의 한 면뿐만 아니라 자아이상과 인생의 청사진과도 이별을 한다.(187p)”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우터 딕만(Ute Dieckmann), 미철리히(Mitscherlich) 등의 애도 연구자들의 말을 빌러 “애도 작업이 방해받으면 한 사람의 정신적 발전과 인간관계와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이 저해된다.(p174)”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애도의 감정이 변화를 가져오기에 우리는 ‘건강하게’ 살게 된다.(p201-202)”라고 강조한다.                                



  『별로 돌아간 소녀』의 마미코와 엄마가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는 애도의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마미코는 현실의 엄마에 대한 실망, 외로움, 집착 등의 속성에 대면하며 내면이 더욱더 단단해졌다면 마미코의 엄마는 봉인했던 엄마의 죽음에 직면하고 그를 통해 자신 속에 내재했던 나약함, 고착, 완고함, 강요 등과 같은 속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마미코와 엄마가 겪는 애도의 과정은 독자인 나의 내면 현실 세계를 자극한다. 지금의 내가 직면하고 극복하고 이별을 고해야 할 속성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애도의 과정을 거칠 것인가. 내가 가장 잘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이제는 떠나보내야 내가 더 새롭고 건강하며 창조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속성과 어떻게 대면할지 그것은 내가 해야 할 나 자신의 숙제이리라. 이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들여다봐야 할 일임을 『별로 돌아간 소녀』속 엄마와 딸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수잔 캐벌러-애들러는 “애도를 통해서 우리는 대상에 대한 기억과 현재의 지각을 내적 현실과 외적 현실로 양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상징적인 내재화로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리는 창조적인 자기- 표현을 이끌어내는 내면 세계와, 사랑을 표현하고 사랑을 주는, 따라서 새로운 대상 관계적 연결의 내재화를 통해 내면 세계를 풍성하게 하는 대인관계 세계 사이를 물 흐르듯이 넘나들 필요가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심리적 난관이 있거나 내면 세계와의 연결(창조성)과 타자들과의 연결(사랑) 사이에서 흐름이 지연되는 부분적인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타고난 잠재력은 축소되고 심리적 건강 역시 위축될 것이다.(『애도-대상관계 정신분석의 관점-』, p74-81) 

 

   판타지 동화 속 내면 여행을 통해 ‘내면 세계를 풍성하게 하는 대인관계 세계 사이를 물 흐르듯이 넘나들’ 었던 『별로 돌아간 소녀』의 주인공 마미코와 엄마 쿄코가 ‘타고난 잠재력이 축소되거나 심리적 건강이 위축되지 않고’ 앞으로는 창조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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