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화 <파과>를 보고 왔어요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영화 <파과>를 보았다.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친구와 보았고, 한 번은 혼자 보았다. 먼저 친구하고 함께 보길 잘했다. 엄청 리얼한 액션씬이 많은 데다, 무서운 씬도 많았기 때문이다. 너무 무서운 장면에서는 눈은 감지 않고, 그 대신에 몇 번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안 가릴 수가 없었는데, 혼자서 볼 때에는 딱 한 번만 가렸다.


친구는 김성철 배우를 좋아해서 성철 배우님에게 내면을 투영하며 본 것 같고, 연우진 배우를 좋아하는 나는 우진 배우님에게 많은 신경을 집중하며 보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혜영 배우님으로 시작하여 이혜영 배우님으로 끝난다.



고강도의 액션, 세상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과 판단력, 단련된 몸, 고독한 삶을 살아내는 힘, 숙련된 운전, 고통과 상처를 인내하는 강인함 등 어느 것 하나 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역할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이혜영 배우가 맡은 조각이란 인물이 우리들 인간 세상 어딘가에 조용히 살고 있을 거라는 묘한 착각이 들었다. 두 번을 보았는데도 착각이라기보다는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조각'이라는 인물의 궤적과 외면에서 풍기는 가히 넘보기 어려운 고고(孤高)한 모습 이면의 고착된 내면 심리의 보편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 '조각' 같은 인물상을 요구하게 만드는 가속화되어 가는 굴절된 사회상과 인간 군상이 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 이 영화를 보았을 때, 흠집 난 과일, 상처 난 과일이란 뜻의 '파과'를 대하는 조각(이혜영 배우)과 투우(김성철 배우)의 모습이 꽤 흥미로웠다. 나는 과일 가게나 야채 가게에 갔을 때, 어떻게 하면 흠집 안 난 과일을 고를까, 채소를 고를까 고심하는데, 이제 과일 가게나 채소 가게에 갔을 때에 전에는 빛의 속도로 패스했던 '파과'나 흠집 난 채소에게 눈길이 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예전부터 흠집 난 과일에 대한 생각은 많았다. 한 자루나 봉지 속에 흠집 난 과일을 함께 넣어두고 방치하면 싱싱했던 과일도 빨리 상하기 쉽고, 썩기 직전의 과일이 제일 맛있고, 상처 난 사과나 토마토도 좀 상처 났다고 그냥 통째로 버리는 것이 아닌 상처 난 부분을 잘 잘라내고 먹을 것 등, 인생에 응용 가능한 비유가 은근 많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파과'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 한 인간의 삶에 비유했을 때의 상징성 등은 또 다른 시야의 확장을 열어주었다.


두 번째 보면서 한 번 보았을 때 놓쳤던 여러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연우진 배우는 동물병원 강 선생 역할로 나오는데, 명함에 적힌 이름이 강봉회였다. 연우진 배우의 본명을 살렸다. 처음에는 우진 배우님의 얼굴 표정만 보였는데 두 번째에는 이혜영 배우님의 미묘한 얼굴 변화나 성철 배우님의 눈빛 등을 주의 깊게 볼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투우가 그린 말 탄 소년 그림. 흰 말을 탄 소년의 얼굴이 온통 검었다. 조각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기에 고착 상태인 투우가 너무 안쓰럽고 그 뛰어난 능력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부르는 김성철 배우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고 웅장했다. 여러 의미로 두고두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싶은 영화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를 보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