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가와 슈헤이, 『우리 가족』(김영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6)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나는 일본 그림책 두 권을 번역하였다. 한 권은 하세가와 슈헤이의 『우리 가족』이고 또 한 권은 보탄 야스요시의 『임금님의 이사』이다.
출판사 쪽에서 그림책 몇 권을 리뷰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내가 갖고 있던 그림책 세 권과 일본 친구들에게 신작 그림책 한 권을 추천받아 네 권을 출판사에 건넸다. 편집위원들의 검토를 거쳐 그중 두 권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세가와 슈헤이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 사춘기 소년소녀의 미묘한 마음, 되새겨야 할 사회적인 문제 등을 결코 평범하지 않게 그리고 있어 일본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던지라 이 작가의 그림책을 한 권이라도 번역해보고 싶었다.
『우리 가족』에는 아빠와 아들이 나온다. 그림책 첫 시작부터 아빠와 아들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와 주차장을 향해간다. 면도를 하지 않은 소탈한 모습의 아빠는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아들은 덤덤하면서도 담백한 인상이다.
『우리 가족』의 일본어 원제목을 직역하면 『커다란 커다란 배』였는데, 출간이 정해진 후 출판사에서 ‘커다란 커다란’이란 반복 수식어 표현이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않다며 『커다란 커다란 배』가 아닌 다른 제목을 원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제목을 ‘아빠와 아들’로 할까? 했다가 바로 도리질 친다. 이 그림책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또 다른 존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엄마다. 엄마는 추억으로만 말해지고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들과 아빠의 내면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리고 뒤표지 주인공으로 등장해 대미를 장식한다. 그렇다. 이 그림책의 진짜 숨은 주인공은 어디론가로 떠나버린 엄마인 것이다. 그리고 그림책에는 엄마가 떠날 수밖에 없는 정황이 그려진다.
나는 이 그림책이 가족 이야기로 읽혔다. 그림책을 보면, “우리는 모두 커다란 커다란 배에 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시대라고 하는 배 말야. 커다란 커다란 배는 갑자기 멈출 수 없어. 방향을 바꿀 때도 서서히 틀지 않으면 배가 기울어 튕겨 나가는 사람이 생길지도 몰라.”하고 아빠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가족 또한 커다란 배란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면에서 가족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도 달리 없을 것이다. 지금은 아빠와 아들 곁에 없지만, 엄마도 포함해 제목을 『우리 가족』으로 하자.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아들에게는 엄마이고, 아빠에게는 한때 아내였다. 그리고 아들과 아빠는 지금은 곁에 없는 엄마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인정하면서 그 존재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서로 공유한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이 엄마를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결코 속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각자 기억하는 엄마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지금 현재의 삶을 누리고 즐기며 앞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아빠와 아들이 엄마를 부정하면서 내면으로 고착하고 구속하였다면 지금이라는 일상을 누리고 즐기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리라.
그림책 맨 뒷장을 보면 한국어판이 출간되어 새롭게 써준 <작가의 말>이 있다. 나는 작가의 말을 번역하면서 ‘역시 하세가와 슈헤이~! 멋지다’하며 감동했는데, 그림책 제목이 바뀐 것처럼 작가의 말도 원래 작가가 보내준 제목과 달라졌다.
<작가의 말> 원제목은 ‘로큰롤한 기분’이었다. 출판사에서 로큰롤한 기분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고 해서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하고, 작가의 말에 내포한 의미 등을 살펴 설명하였지만 직접적으로 잘 전달이 안된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는 또 다시 고민 끝에 ‘아빠와 아들이 찾아가는 삶의 여정’으로 바꾸었다.
나는 그 후로도 그림책이 지향하고 작가가 지향하고자 했던 ‘로큰롤한 기분’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바로 먼저 든 생각은 열정, 자유, 순수, 신념을 지닌 삶의 모습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속하거나 구속받는 삶이 아닌 건강성을 지닌 채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며 일상을 즐기고,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로큰롤한 기분’이 들게 하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가족』을 번역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생활감이었다. 그림책을 넘기면 마치 드라마 장면처럼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오듯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때는 길가다가도, 지하철에서 옆에서 대화하는 분들의 생활 속 일상 말투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사소한 대화 하나하나가 귓속으로 쏙쏙 들어오곤 했다. 세상 속에 나 또한 편입되어있고, 함께 하는 중이라는 실감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이 그림책을 보면 신기하게도 많은 위로를 받는다.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함께 읽어야 제맛이고,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읽어주었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읽을 때 내가 못 보던 이미지가 보이고, 내가 그냥 스쳐 지나쳤던 낱말이 내면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림책은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아직 두 권밖에 번역 그림책 출간 경험이 없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나는 마치 베테랑 번역가마냥 티를 낸다. 뭐 어찌 되었거나 이 두 권의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긴 사람은 나다. 이 두 권에 대해서는 그냥 만사 재치고 떳떳해지자. 뭐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