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윤덕,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창비, 2005)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권윤덕의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에는 여자아이와 고양이가 나온다. 여자아이에게는 친구가 고양이밖에 없고, 고양이에게는 친구가 여자아이뿐이다. 둘은 죽이 척척 맞는다. 하나인데 둘이고, 둘인데 하나이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내가 신문지 밑에 숨어도 문 뒤에 숨어도 따라 해. 책상 밑에 숨어도 옷장 속에 숨어도 나만 따라 해.”라며 여자아이와 고양이는 하나가 되어 함께 논다.
그들이 노는 공간은 집 안이다. 집 안에는 여자아이와 고양이 단둘이다. 집 안의 모든 공간이 둘만의 놀이터가 된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런데 오늘부터는……”라며, 이번에는 여자아이가 “내가 고양이를 따라 해야지”하며 반전이 일어난다.
발터 벤야민은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란 글에서, “어린아이들이 하는 놀이들은 도처에서 미메시스적 태도로 특정지어지는데, 어린아이들의 놀이 영역은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모방하는 것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어린아이들은 상인이나 선생을 흉내 내는 것만이 아니라 물레방아나 기차도 흉내 내며 논다.(최성만 옮김, 『번역가의 과제 외』, 도서출판 길, 2008, p211-212)”라며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놀이 속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모방’하여 무의식적으로 그 힘을 활용하고 있음에 대해 말한다.
권윤덕의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주인공 여자아이도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고, 마음이 통하는 존재인 고양이를 흉내 내며 그 힘을 빌린다. 한 단계 한 단계 연습 단계를 거쳐 여자아이는 그 에너지를 집 안이 아닌 집 밖으로 분출시키며 드디어 친구들과의 놀이 세계로 뛰어든다.
어쩌면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여자아이는 고양이의 유연함, 용맹함, 날렵함 등을 선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학창 시절 ‘모방’에 대한 편견으로 조카를 혼냈던 적이 있다.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을 때 어른들은 모두 일을 나가고 조카들을 돌본 적이 있는데, 둘째 조카가 무슨 놀이를 할 때마다 자기 나름의 방법이 아니라 형이나 동네 형들을 따라 하는 것이다. 어린 조카는 마냥 신이 나서 놀고 있는데 나는 둘째 조카에게 형들만 따라 하지 말고 너만의 방식을 생각해봐, 하며 야단을 친 것이다. 조카는 어쩌면 고모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조카들과의 그 많은 기억들 중에서 지금껏 이 기억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조카에게 내 편견과 잣대만을 강요했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놀이 세계에 대해 본능적으로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잘 즐기는 아이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가란 생각이 든다.새삼스럽게 이제야 우리 조카에게 너무 미안하다.
둘째 조카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를 선물하며 고모가 그때 그렇게 말했는데 기억하냐고 물어보고 싶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 누구를 모방하는가. 나는 우리 동네나 길가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을 모방하곤 한다. 그들의 웃음소리, 활기찬 에너지, 인사성 밝은 모습, 동물들을 향한 관심, 사심없는 태도, 성장하는 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 동생을 대하는 태도 등 나는 어린이에게서 배우고 모방한다.
그러면서 혼자 말한다, “아이들아, 너희들의 그 힘을 내게 좀 빌려다오!”라고.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에서 주인공 여자아이에게도 고양이의 힘이 필요했다. 내가 주저하고, 내가 꺼려하는 것을 나 혼자 극복하기 힘들 때가 있다. 타자의 힘이, 타자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자아이는 “고양이처럼 깜깜한 창밖을 찬찬히 살펴보는 거야. 그래도 무섭지 않아.”라며, 고양이 눈이 되어 어두운 창밖을 주시한다. 고양이의 힘을 빌린다면, 내가 고양이라면, 그래 바깥세상 무섭지 않다란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의 여자아이는 마침내 고양이처럼 “몸을 크게 부풀리고 마음도 크게 부풀려.” 밖으로 나간다.
이때 여자아이가 신은 운동화가 엄청나게 큼지막하고, 엄청나게 탄탄해 보인다. 거친 돌바닥도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고양이이와 여자아이는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봄에 피는 들꽃 꽃마리를 닮은 야생화는 한 잎도 밟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란 그림책의 힘을 얻는 내가 있다. 준비 완료, 그럼 나도 한번 달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