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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Sep 20. 2022

우리 동네 보안관

파출소에 신고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재

출근 시간에 쫓겨 가게 앞을 허둥지둥 지나갔던 사람들이 퇴근 무렵엔 피로에 쌓인 무표정한 얼굴로 되지나 가는, 나름의 바쁜 일과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  

앞이 훤히 트인 가게라 일부러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오가는 행인들의 모습이 자연히 한눈에 들어온다.

그중에 라인동산 보안관이라 불리는 한 아저씨가 있다. 아무한테나 별의별 참견을 하고, ‘안 되겄구마. 파출소에 신고해야쓰겄구마.’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들먹거려서 붙은 별명이다.

아침에는 피마자기름을 발라 번들거리는 머리를 2:8로 갈라 귀에 바짝 붙이고 멀쩡한 정신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게 앞을 휙 지나간다. 해거름에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음 직한 비척걸음으로 아침에 타고 갔던 자전거를 힘겹게 끌고 온다. 자전거 뒷자리에는 어김없이 무등산생막걸리 한 병이 포승줄에 묶여 가로누워 있다. 

땀 흘려 일한 다음에 들이켜는 막걸리 한 사발이 꿀맛일 수 있다. 고된 노동의 피로를 해소하는 낙으로 적당히 한두 잔 마시는 것은 좋지만, 그 아저씨는 1년 365일 중에 300일은 술독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아저씨가 술에 취해 시비를 걸 때는 말대꾸를 하지 않는 게 장땡이다. 뭐라고 한마디 했다가는 조용히 지나가는 법이 없으니 뒷감당이 안 된다. 얘기하는 상대방도 없이 혼자 떠들거나, 아무한테나 시비조여서 완전히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진배없다. 


얼마 전에 가게 앞에다 야외용 돗자리를 펴고 도토리를 말리고 있을 때다.

그날도 여전히 막걸리 한 병을 실은 자전거를 끌고 오다가 우리 가게 앞에서 멈추더니 도토리를 널고 있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도토리는 얼른 물에 담가야 혀. 내가 시방 예순두 살인디, 옛날에 많이 해봐서 알아. 내가 나이 묵어서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할랑가 몰라도 내 말대로 혀. 글안하믄 볼가지가 싹 묵어부러."


뻔히 아는 얘기를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하였다. 내 옆에 앉아 어찌나 조근조근 말하는지, 아무리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근본은 미처 보지 못한 장점이 있을 거라 여길 즈음, 그 아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태도가 돌변했다. 


"왜 말을 그렇게 하까? 영 듣기 거시기하네!"


남들이 그 아저씨에 대해 뭐라 하든 내 딴에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몇 마디 말대답을 주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임의롭게 대해주려는 내 말의 끝이 짧아 귀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쁘네! 왜 말꼬리를 잘라부까? 왜 말꼬리를 잘라부냐고!"


어른을 뭘로 보고 무시를 하냐는 둥 생억지를 쓰며 내지르는 소리가 찌렁찌렁 울렸다.

얘기를 하다 보니 슬슬 부아가 더 치밀어 오르고, 그 부아에 가속도가 붙은 듯했다.

걸어 다니는 폭탄을 잘못 건드려 안전핀을 확 뽑아버린 격이 되어버린 셈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어찌나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를 되풀이하던지 너무 황당하여 가게로 얼른 들어와 버렸다. 내가 말 상대를 해주지 않자 자전거를 끌고 몇 발자국 가는가 싶더니 되돌아와서 목에 핏대을 세우며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되겄구마! 전화를 해야 쓰겄구마!"


우리 가게 옆의 미그린화장품점이나 란제리 옷가게 아줌마가 그 아저씨한테는 아무 대꾸도 안 하는 게 상책이라고 고개를 흔들며 얘기하던 말의 뜻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며칠 후, 오전까지 멀쩡했던 하늘이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 우중충해졌을 때다. 몇몇 할머니들이 나물을 팔고 있는 길가 쪽에서 신경질적인 따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찬거리를 사러 나온 아줌마들이 북적거리는 틈을 비집고 무릎까지 올라온 노란 장화를 신은 그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일찌감치 막노동을 끝냈는지 공사판에서나 볼 수 있는 흙손이 그 아저씨의 허리춤에서 덜렁거렸다.

볕에 그을려 시커먼 얼굴이 술에 절어 더욱 벌겋게 달아오른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전거 뒷자리엔 막걸리 한 병이 묶여 있었다. 그 아저씨가 비좁은 인도로 끌고 오는 자전거 앞바퀴에 엉덩이를 살짝 부딪힌 한 행인이 인상을 구기며 힐끔 돌아보다가 얼른 비켜섰다. 만약에 한마디라도 대꾸를 했다간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한 장광설로 늘어놓는 욕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 일 없이 무사히 가게 앞을 지나가나 싶었으나 결국 김밥나라 앞에 차를 세워두고 각종 야채를 파는 아저씨와 시비가 붙었다.

길에다 박스를 펴놓고 좌판을 벌여놓은 채소 위로 자전거 바퀴가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야채 파는 아저씨가 뭐라 싫은 소리를 한마디 하자마자 팔을 걷어붙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거 뭐 하는 짓꺼리여? 길도 좁은디 사람이 지내댕기는 길에다 채소를 늘어놓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여? 안 되겄구마. 전화를 해야 쓰겄구마. 전화를 해야 쓰겄어!"


입 안 가득 공기를 집어넣자 볼때기가 복어 배처럼 부풀더니 "푸!"하고 내뱉는 소리와 함께 이내 푹 꺼지기를 반복하며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무한 반복하였다.

술에 절어 제 몸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위태해 보이는 그 아저씨가 또 파출소에다 신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야채 파는 아저씨는 더는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는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못 들은 척했다. 몇 번의 경험으로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 것이다. 

그 후로도 종종 야채 파는 아저씨한테 시비를 거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뉘 집 개가 짖느냐는 식으로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를 하자 제풀에 꺾여 더는 할 말이 없는 듯 제 갈 길을 갔다.


그 아저씨도 한 가정의 가장일 텐데 허구한 날 술주정에 부대끼며 사는 가족들은 오죽할까?

그 아저씨를 보며 이 세상의 많은 부류들 중에 '꼭 있어야 할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굳이 분류를 한다면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를 생각해본다.

살면서 남한테 폐를 끼치거나, 궂은 말은 듣지 않아야 할 텐데 무심코 한 나의 언행이 행여 누가 되지 않을지 한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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