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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Oct 26. 2022

불법 체류 서생원과 한 판

자취 시절을 회상하다

자취 10년 동안 다섯 번을 이사했지만 이사 갔던 집마다 방 구조가 실용적이지 못하여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방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안목이 없는 나를 엄마가 동행하여 함께 둘러보았으면서도 둘 다 눈은 폼으로 달고 다녔나 보다. 

촌티가 줄줄 흐르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벽지로나마 새로 도배가 되어 있는 빈방을 봤을 때는 데굴데굴 굴러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 보였다. 그런데 막상 빨간 밍크 담요 한 장과 비키니 옷장을 윗목에 들여놓은 후, 전파사에서 중고 12인치 흑백 TV를 사서 구색을 갖추고, 누군가 전봇대 밑에 내다 버린 사과 궤짝 하나 주워다가 부엌으로 통하는 벽면에 찬장 대용으로 놔두고 밥그릇과 국그릇을 엎어놓고 나니 겨우 누울 수 있는 공간만 남았다. 부엌은 한쪽 벽면에 기대놓듯 연탄을 들여놓자 겨우 쪼그리고 앉아서 설거지할 공간만 있을 뿐, 이사 갔던 집마다 세를 살기엔 부적합한 방이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딱 맞았다. 세입자의 편의는 전혀 안중에 없는 집 구조상 세든 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좁아 방문이 채 열리지 않았다. 어쩌다 집에 손님이라도 오게 되면 순번을 정해서 방문을 여닫으며 들락거려야만 했다. 그래도 용케 계약기간 2년을 채웠다. 어려운 집안 형편상 좀 더 나은 방을 고집할 여력이 안 되었던 것인데 어쩌면 버텨냈다는 표현이 더 맞다.

그중 세 번째로 이사 갔던 집은 주인 영감님이 복덕방을 하고 있었는데 입에 발린 말로는 아무한테나 세를 내놓지 않는데 내가 참해 보여서 세를 주는 것이라면서 오만 생색을 다 냈다.

그래도 외관상 허름해 보이지도 않고 남향집인 것이 우선 맘에 들었다. 커다란 유리창이 일반 유리문과 창호지를 바른 창살문이 겹으로 되어 있어 보안이 잘 되어 보였다. 여름엔 유리창을 활짝 열어두면 정말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겨울에도 외풍이 전혀 안 느껴질 것 같아 얼른 계약을 했다. 아니, 덥석 해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다.


유리창을 열면 방 안 가득 맑은 공기를 들여놓을 수도 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을 들고 창틀에 기대어 바깥을 내다보며 휴일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대문 옆에 붙어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 정면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이니 순전히 계산 착오였다. 

유리창이 있으나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사뭇 코를 움켜쥐게 할 정도로 고역스러워 도저히 창문을 열어둘 수가 없었다. 도리어 역한 냄새가 스며들어올 틈새를 막느라 비상이 걸렸다. 


노란 박스테이프를 사다가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는 유리창 틈새를 완전히 봉쇄하고 나니 밝은 대낮에도 자연의 빛이라곤 방문에 손바닥만 하게 붙어 있는 유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게 전부였다. 문을 닫고 방 안에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그러니 뭘 하려고 꼼지락거리려면 필히 전등을 켜고 있어야 했다. 또한, 네 짝 미닫이문이 방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윗방, 아랫방의 경계를 그으며 버티고 있었으나 말이 상하방이지 윗방과 아랫방을 합쳐봐야 큰방 하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윗방의 왼쪽 구석에는 150리터짜리 냉장고를, 오른쪽 구석에는 주인집에서 쓰다 버리려던 장롱을 이불장 겸 옷을 넣어두는 용도로 두었다. 그 외 잡다한 세간살이를 나머지 공간에 배치해놓고 나니 윗방에는 그다지 여유 공간이 없었다. 게다가 그 방은 불기가 전혀 없는 냉방이라 주로 아랫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한겨울에는 윗방에서 형성된 냉기류가 아랫방 쪽으로 건너오는 바람에 코가 시릴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미닫이문을 꽉 닫아야 했다. 아랫방은 설설 끓는 아랫목에서 뜨끈뜨끈하게 궁둥이를 지질 수는 있어도 햇살이 들어올 틈이 없는 암흑의 세계나 다름없어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놓고 지내야 했다.


달리 대화할 상대도 없었다. 어쩌다 혼잣말을 해놓고 내 말소리에 화들짝 놀랄 때도 있었다. 내가 부스럭거리지 않는 한 절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고요한 정적을 깨고 윗방 혹은 천장 쪽에서 조심스러운 부스럭 소리가 들리더니 이젠 거의 매일 천장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지 아니면 야(夜)기 축구 시합이 있는지 이쪽저쪽으로 통통거리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렸다.


내가 엄연히 전세계약서에 세입자 서약을 하고 합법적으로 살고 있는데 설마하니, 부동산 중개를 업으로 하시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세입자의 사전 양해도 없이 서생원과 모종의 이중계약을 하셨을 리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어디엔가 있을 나의 반쪽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아무리 결혼을 못해 노처녀로 쭈그러들까 봐 안달이 났다 하더라도 아무려면 서생원과의 동거를 원했을라고?


그건 엄연한 불법 체류였다. 하지만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여전히 통성명도 없고, 얼굴은커녕 쥐꼬리조차 보이지 않은 서생원이 꼭 내가 집을 비운 틈이나 잠든 다음에 주린 배를 채우러 활보하고 다닌 듯했다.

그런데 점점 간땡이가 부은 건지, 아니면 혼자 사는 여자라고 만만히 보았거나 우리 집이 살만하다 싶었는지 쿵쾅거리는 발소리로 미루어 짐작건대, 한두 놈이 아닌 듯했다.


이제 내 인내에도 한계에 달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빗자루나, 똘똘 뭉친 걸레를 천장을 향해 던져서 조용히 하라고 위협을 했다. 그러나 노처녀의 히스테리에 움찔하듯 조용한 것도 잠시뿐이었고, 또 다시 쿵쾅거리기 일쑤였다.

낮에는 내가 집에 없어서 모르고, 휴일에 집에 있을 때는 서생원도 움직임이 없이 조용해서 잡을 수가 없었고, 밤이면 여지없이 사각거리는 소리에 정말 신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저 소리는 분명 콩깍지를 까는 소리인데 말이야.'

엄마가 시골에서 올라오셨을 때 입이 궁금할 때 삶아 먹으라고 껍질을 까지 않은 콩을 갖고 오셨었는데 그걸 물어다 야금야금 까먹고 있었던 듯하다.

냉장고 쪽에서 들리는 콩깍지 까는 소리를 따라 숨소리도 내지 않고 살그머니 다가가면 이내 조용했다.

냉장고 밑의 물받이 판을 잡은 다음 후다닥 잡아당겨 보았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서생원이 있었던 흔적은 있는데 잽싸게 도망쳐버렸는지 여전히 숨바꼭질에서 나만 술래였다.


어느 날, 큰맘 먹고 냉장고를 청소하던 중 냉장고 밑에 있는 물받이 통을 비우기 위해 잡아당겼을 때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 안에는 잘게 조각난 콩깍지와 갈기갈기 찢어진 종잇조각이며, 말라비틀어진 쥐의 배설물이 수북이 쌓여 냄새가 진동을 했다. 서생원의 행방이 그토록 묘연하여 내 신경을 긁더니만 왜 여기를 몰랐을까?  

내가 냉장고를 여닫을 때 서생원이 물받이 통 안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조롱하듯 웃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등줄기를 타고 일순간에 발끝까지 찌르르 전류가 흐르면서 머리카락이 쭈뼛거리며 소름이 오싹했다.


부엌 한쪽 구석에 쌓아 두었던 연탄도 예외는 아니었다. 100여 장의 연탄이 10장씩 벽에 기대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제 소임을 다 하고 희끄무레하게 탈색된 채로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후 몇 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기절초풍할 뻔했다. 

맨 아래쪽에 있는 연탄마다 층층이 쌓아놓은 연탄의 무게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한쪽 귀퉁이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주위에 널려 있는 쥐똥의 흔적으로 보아 서생원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시커먼 연탄을 갉아내고 그 틈바구니에 너덜거리는 비닐조각이며, 잘게 갉은 종잇조각으로 둥지를 만들어놓았다.


설거지를 할 때 수세미를 분명히 썼는데 어느새 없어져 버렸거나, 감쪽같이 사라진 걸레는 물론, 한 짝만 남은 양말까지, 내가 그토록 애꿎은 귀신 탓만 하고 있을 때 서생원이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하나씩 뒤로 빼돌려 지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사람 좋다는 것이야 배우자 고를 때에나 유리하게 작용하겠지만 서생원한테 잘 보일 일이 있나, 더는 못 참겠다.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는 거야!

"잡자!"

드디어 단호한 결심을 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불끈 쥔 후 이를 악물고 불법 체류 중인 서생원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먼저 서생원이 주로 다닐 만한 장소들을 파악한 후 퇴로를 막기 위해 망을 보기로 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지원해줄 아군은 없고, 외로이 나 혼자 대적해야 할 상대이지만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 몽둥이로 때려잡느냐, 아니면 고양이를 풀어놓느냐, 그것도 아니면 쥐약을 놓느냐? 등등 나름의 치밀한 작전을 세우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몽둥이로 때려잡기엔 서생원이 징그럽다 못해 무서웠다. 고양이를 풀어놓자니 어렸을 적에 고양이를 만졌을 때 꾸르륵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질겁했던 기억이 나서 고양이는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시집도 안 간 노처녀의 집에서 때아닌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의 쑥덕거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아니고 고양이 울음소리여라우!"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변명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아니, 솔직히 풀어놓을 고양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쥐약을 놓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긴 하다. 쥐약 먹은 서생원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힌 채로 게거품 물며 혓바닥을 길게 내놓고 뻣뻣하게 죽어 나자빠져 있는 것까지는 두 눈 질끈 감고 연탄집게로 집어서 내다 버리면 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집구석 어딘가에서 부패하고 불은 밥알 같이 생긴 벌레들이 우글거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서생원과 동거(?)를 감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랫방 천장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구멍이 생긴 걸 발견했다. 며칠 지나자 그 구멍이 점점 눈에 띄게 커졌는데 아무래도 서생원이 그 구멍으로 들락거리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기어이 그 놈의 생긴 낯짝을 보고 결딴을 내고야 말겠다!' 결심하고 형광등을 켜놓은 채로 누워서 실눈을 뜨고 망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망보기를 단념하려는 찰나 천장 구멍을 통해 벽을 타고 내려오려고 뚫린 구멍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서생원의 장난감 총알같이 생긴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순간 소름이 쫙 끼쳤지만 나도 질 세라 눈을 부라리며 째려봤다. 서생원이 내가 잠든 줄 알고 내려오다가 내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잠시 움찔하는가 싶더니 잽싸게 내려와서 윗방 쪽으로 쪼르르 기어가더니 냉장고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서생원과의 담판을 벼르고는 있었지만 야심한 밤에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잠이 들었을 거라 방심하고 내려오다가 눈이 마주친 서생원도 어쩌면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을 터였다. 

기나긴 밤들을 잠 설치게 한 주범이다.

'오늘은 니 죽고 나 살자!'

고무장갑을 끼고 한 손엔 빨랫방망이, 또 한 손엔 연탄집게를 들고 심호흡을 하면서 혼자 필승을 다짐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서생원이 발악을 해가며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버릴까 봐 완전무장을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었다.


일단 서생원이 숨을 만한 곳을 차단하기로 했다.

장롱 틈으로 숨어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큰 이불 호청으로 길게 발을 치듯 장롱 틈을 막았다. 상하방 중간의 미닫이문 네 짝을 모두 떼어 장롱 쪽으로 가는 길을 원천봉쇄하고, 부엌 쪽으로 가는 길도 차단했다. 그리곤 잠시 생각했다. 방망이를 힘껏 내리쳐서 쥐를 때려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방 안에 서생원의 피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널브러진 서생원을 처치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여자 혼자 산다고 얕보지 말라고 최대한 위협을 해서 밖으로 쫓아내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연탄집게로 냉장고 밑을 쑤셨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냉장고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다. 그리고 빠져나간 것을 전혀 못 봤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구석 저 구석을 찔러봤는데 역시 찍소리도 나질 않았다. 물받이 통을 확인해도 없고, 냉장고 뒤쪽을 쑤셔봤는데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인기척에 놀라 벌벌 떨고 있을 서생원에게 갱생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얼른 자수하고 도망가라는 신호로 냉장고를 탕탕 두드렸는데도 조용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 여기며 다시 한번 냉장고 뒤쪽을 기웃거리다 철망 안쪽의 중간쯤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서생원의 겁먹은 눈과 두 번째로 마주쳤다.

비장함으로 똘똘 무장하였어도 시커먼 낯짝이 여전히 징그럽고 오싹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연탄집게로 쑤셨다. 은신처를 발각당해 더는 웅크리고 있을 수 없게 된 서생원이 찍! 찍! 발악을 하며 냉장고 뒤쪽에서 나와 장롱 쪽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던 서생원이 장롱을 가로막고 있는 미닫이 문짝을 벅벅 긁으며 주춤거리는 등짝을 빨랫방망이로 내리쳤다. 그러나 미닫이 문짝 때문에 빨랫방망이가 제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서생원은 빨랫방망이로 한 대 퍽! 맞고도 이쪽저쪽으로 재빠르게 도망을 다녔다. 쫓고 때리고를 몇 번 반복한 끝에 드디어 밖으로 내쫓는 데 성공을 했다.


힘겨운 전쟁은 그렇게 위협으로 끝났다. 빨랫방망이로 몇 번 얻어맞았을 그 서생원이 큰 부상은 아니더라도 혼자 살고 있는 여자라고 만만히 보고 설치다가 된통 혼이 났는지 그날 이후 더는 볼 수 없었다. 아마 일가족을 이끌고 조용히 피난길을 나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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