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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애 Oct 03. 2022

이불 밖은 위험하다

모기와의 전쟁

이불 밖은 위험하다          

우리는 주로 거실에서 생활하고 다른 집에 비해 전등을 일찍 끈다. 결혼 초에는 적응이 안 되었는데 이젠 누워서 캄캄한 상태로 TV를 잘 본다.

거실 창문 너머로 바로 보이는 도로교통공단, 녹음이 짙은 뜰이 우리 정원처럼 보기 좋은데 건물 3층 높이까지 자란 나무들 때문에 모기들이 극성이다. 한여름에는 모기가 피서를 가는지 찬 바람 불 때 우리 집에 무단 투숙하면서 낮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밤에 설친다. 


모기 한 마리가 앵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콧속 동굴 탐험이라도 할 참인지 코 주위를 알짱거린다. 녀석의 발끝이 닿는 낌새가 느껴져 손바닥으로 잽싸게 콧등을 때렸다. 감정이 실린 손때가 매웠는지 얼얼하니 아프다. 모기 잡으려다 애꿎은 내 코를 더 납작코 만들 뻔했다.


나는 모기의 놀이터이고, 밥이고, 곳간이다. 환할 때보다 어둠을 틈타 얼굴이며 팔, 다리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밤마다 괴롭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고 있으면 모기가 앵 소리를 내며 주변을 맴돈다. 잠이 달아난다. 불을 켜고 일어나 모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두 손바닥을 펴서 탁 마주쳤다. 눈치 빠른 녀석이 갑자기 방향을 홱 틀어 도망을 친다.


한 번 두 번 세 번…헛손질의 횟수는 늘어가고 모기는 내 손바닥을 피해 유유히 천장을 향해 날아올랐다. 모기를 검거하려다 실패했다. 결국 난 녀석의 등장을 격한 박수로 환영하는 꼴이다.

손톱만도 안 되는 모기가 한 방울의 피를 뽑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주변을 호시탐탐 염탐하다 약 올리듯 내 뺨을 툭 치고 달아난다. 모기의 눈엔 내가 뭐로 보일까 실소를 금할 길 없어 한마디 했다.


“니 눈에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며칠 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보느라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켜자 모기가 나를 따라 방으로 날아들었다. 저의 놀이터이자 식량 보고가 이동한 탓이다.

책을 보다가 주위를 알짱거리는 모기를 두어 차례 헛손질하다 잡았다. 배가 홀쭉하다. 아직 오늘 한 끼도 못 먹고 내 손에 압사당한 것이다. 지지리 운이 없는 놈이다.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여지없이 모기가 발로 얼굴을 건든다. 조심성도 없다. 내가 반응이 없으면 모기는 더 대범해진다. 내 귀에 대고 앵! 하는 사이렌 소리를 내기도 하고 빠른 날갯짓을 하며 공격할 때 미세한 바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O형 피가 전천후라도 지들한테는 기부 의사가 전혀 없는데 강제로 피를 뽑아가다니, ‘불법 혈액 채취’로 고소장을 보내서 영금을 보게 해버릴까.     

내 으름장에도 아랑곳없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든, 양파망이라도 뒤집어쓰고 자든 무슨 방도를 찾아야 할 듯싶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결국 이불 속에 나를 가둔 꼴이다.


잠시 후 어디선가 잠복해 있다가 이불 밖에서 앵~ 소리가 요란하다.

‘빨리 나와! 안 나와!’

안달하며 이불 위를 비행한다. 호시탐탐 정탐하는 앵 소리가 신경을 긁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답답하여 손이라도 내놓고 있자 여지없이 깨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모기와의 신경전에 더럭 겁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어김없이 얼굴에 네댓 자국 붉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거울을 마주하기가 두렵다.     

주방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문 앞에서 한꺼번에 여섯 마리를 소탕했다. 밖으로 나가려고 방충망 앞에서 바삐 틈을 찾고 있다가 딱 걸렸다. 밤새 설쳐대느라 기진하기도 하고 배가 빵빵하여 미처 도망을 못 가고 잡혔다.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는데 설마하니 모기가 이불을 쳐들고 나를 공격했을 리는 없고, 내가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고 “옜다!”하고 얼굴을 드러내놓았나 보다.


밤마다 전자모기채를 들고 전투 태세다. 앵 소리도 없이 얼굴이며 팔에 침을 꽂는 모기를 소탕하기 위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눈에 보이는 즉시 잡는다.

두 녀석은 천장에 붙어 있다가 전자모기채에 쇼크사 당했고, 나머지 몇 녀석은 벽에 붙어 있다가 내 손바닥에 압사했다.

다 죽었겠지, 하고 방심하고 있다가 팔이 따끔하다.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죽으려고 한 녀석이 그새 침을 꽂았던 모양이다. 채 소화되지 못한 피가 손바닥에 묻었다. 강제로 헌혈 당한 내 피다.


몇 번 더 내 팔뚝이며 뺨을 때린 후에 모기를 잡긴 했는데 한 녀석이 끝까지 발악하며 내 얼굴을 염탐하며 허점을 노리느라 주위를 맴돈다. 아직 나를 노리고 있는 모기가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불을 끌 수도 없고 잠을 청할 수도 없다. 윙윙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반복하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모기 한 마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천장 벽지의 거뭇거뭇한 무늬 때문에 모기가 붙어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수색에 들어갔다. 왼손바닥으로 뒷머리를 받치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구석구석 살폈으나 잔당들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러다 여지없이 모기 밥이 되고 말 것 같다.     


모기와의 신경전, 이대로는 안 되겠다. 대책을 모색했다. 모기로부터 격리가 답이다. 그 해결책이 모기장에 들어가는 거다.

이제 밤마다 모기장에 갇혀 포로가 된다. 자발적 포로다. 모기의 공격을 받아 얼굴을 폐허로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포로가 낫다. 모기가 모기장에 찰싹 붙어 나를 주시하고 있다. 언제쯤 빨대를 꽂을지 입맛을 다시고 있는 중일까.

모기장 안에 누워 있는 나를 쳐다보다 안달이 난 모기가 이쪽저쪽 자리를 옮겨 다니며 ‘앵앵!’ 발광한다. 모기장에 나를 가둬놓고 눈앞에 포로를 두고도 빨대를 꽂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할까.


모기장 안에서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모기의 동태를 살폈다. 모기 다섯 마리가 앞면, 옆면에 붙어 모기장을 포위하고 틈새에 발과 주둥이를 들이밀려고 애를 썼다.

‘내가 나가나 봐라!’     


누워서 허공에 대고 발을 깐닥거리다가 엄지발가락으로 모기장에 붙어 있는 녀석들의 면상을 번갈아 툭 쳤다. 주둥이를 강타당하여 빨대가 접힌 모기가 뒤로 튕겨 나갔다.


‘메롱이다. 약 오를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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