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여행사이, 어딘가
계절이 오고 간다.
흐른다.
추위에 약한 나는
가을 겨울의 발걸음이
사실 두렵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어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로
가방을
털썩- 올려 놓는다.
그 앞에 커다란 창문이 있다.
여름 내내 시원한 바람을 날렸던 드넓은 창.
잘 자라고, 무더위를 식혀주던 바람.
지난 가을을 시작으로
쓸쓸한, 차갑디 차가운 공기가
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의 흐름이니
그러려니 받아들여야 하는데
마음은 다르게 흐른다.
지난 초가을 무렵 있었던 일이다.
특유의 시원청량함을 즐기기도 전
지나간 여름에 대한 아쉬움으로
시간이 총알같이 흘러가 버렸다.
도리도리-
정신을 차리고,
책장에 꽂혀있던 지난 여름학기 문화센터 책자를 집어들었다.
재활용품 box로 보내려다 순간 멈춘다.
표지 사진 때문이다.
사진은 마치 '마지막 여름의 환상' 같다.
일상의 한 순간이지만, 허구같기도 한... ... .
이상하게도
빛보다 그림자가 눈에 들어오고,
서로가 서로를 은은하게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여름의 그림자
여름 바다가 흘러 내린다.
나뭇잎 사이 사이
시원한 바람이 다가와 맺힌다.
그림자는 바다가 되고
흐르고 흐른다.
빛과 그림자
둘 사이에
경계는... ...
없다.
그림자는 여기에 와서 맺히고
또 흐른다.
그렇게 흘러간다.
인생도
하루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두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뿐.
빛에서
그림자로
다시 바다로
땅으로... ... .
'두 눈을 감고... 흐른다' 는 표현을 쓰고 보니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라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연인과 헤어진 후
바다 품으로 들어가 물과 하늘 사이에
몸을 맡기는 소녀.
그 화창한 날씨 아래
뭐가 그리 서러운지 서글프게 운다.
이유도 모를 눈물이 내게도 솟구쳤다.
'배 속의 태아 처럼 그 안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너무나 막막한... ... .'
그 마음이 화면 가득 소녀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아마도
직업도, 성격도 비슷하다 느꼈던 그녀에게
마음이 담겨져 버렸던 듯 하다.
옛 연인의 전시회에 푸른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소녀는
무덤덤하게 인사하고 돌아서 나온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가볍다.
아무 미련없이 느껴지는 발걸음.
아니,
그 기억을 따뜻함으로 '안녕'하고 떠나는 뒷모습.
그 컴컴한 영화관의
또 다른 소녀도 많이 자랐다.
... 정말 자랐을까?
여전히 불안하고, 어디로 흘러갈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지 어리 둥절하다.
하지만,
한번 더 희망을 안고 유유히 흐른다.
두둥실
가끔은 그 희망 구름이
커졌다
작아졌다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옅어졌다
흐려졌다... ... .
움직인다.
봄, 여름이면 부드럽고 은은했던 그 구름은
가을이면 낙엽처럼 떨어지곤 한다.
아마 지금 내가 힘든 건
계절 때문이려니, 날씨 탓이 크려니 하고
위로하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