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현실 사이의 구름
나는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저녁시간이었고 일몰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어서 하늘의 색과 그림자, 공기의 온도 가 매초마다 달라지고 있었다. 손길이 닿은 흔적이 없는 풍경 속에 서서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브라힘, 너는 왜 살아?"
생각지 못 했던 질문이었는지 이브라힘이 머뭇거렸다.
"글쎄, 알라만이 아시겠지. 그 분의 뜻일 테니."
"나처럼 알라를 믿지 않는 사람은?"
나의 답 없는 질문에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긴, 답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이미 무슬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 은수."
"응?"
이브라힘이 내 이름을 중얼거리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그거 알아? 네 이름이 아랍어로 무슨 말이랑 비슷한지?"
"뭔데?"
"잊어버리다."
"잊어버리다?"
"응, 잊어버리다."
그 순간, 사막이 어둠 속에 휩싸이며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주를 보았다.
모래를 흩뿌려놓은 것 같은 별들 가운데로 위성들이 날아다니고 뭉글뭉글한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내가 누워있는 이 황갈색 모래사막이 푸른별 지구가 아니라 어쩌면 진짜 화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다같이 커다란 강이 흐르는 화성.
문득 내가 떠나온 푸른 별이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머나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내 가족도, 친구도, 학업도, 매일 웅크리고 누워 우울로 앓아내던 서울에서의 새벽도.
조은수,<스물셋, 죽기로 결심하다> 중에서
푸른 별을 떠나 나도 나의 과거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상관없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왜일까?
시간은 앞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미래는 과거의 마음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흔히 보았던, 들었던 말인데
현재에도 과거는 내 마음 속의 응어리를 흐르고 있다.
그 응어리의 묶임에서 멈추고 말 것인가
그 응어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그 응어리를 풀어낼 것인가
나도 '잊어버릴 때' 행복... 비슷한 것을 느낀다.
나 자신이란 존재를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의 그 무엇에 몰입했을 때.
거기에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포용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과거의 마음과
그리움
내가 할 수 있는 건 현재의 일상을 유지하는 것.
나는 그런 작은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