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두운 사람에게는 밝은 사람이 필요하다.
밝은 사람에게는 어두운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2.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양쪽 귀에 화려한 피어싱을 주렁주렁 달고, 사람 한 명은 족히 들어갈 법한 힙합 스타일의 바지를 입는 사람. 모두가 첫인상은 불량스럽다 생각할지라도, 몇 번의 대화 후에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사람. 다들 그를 알고, 장난스럽게 구박하고, 그가 없는 자리에도 꼭 언급되는 사람.
단순한 사람.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밝은 사람. 어울리는 대학교에 다니고 어울리지 않는 전공을 한 사람.
3.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되었을 때, 그는 나의 대학교와 전공을 곧바로 맞추었다. 그리고는 원래 자기가 촉이 좋다며 뿌듯해했다. 덕분에 내가 유난히 낯가림과 경계가 심한 인간이라는 걸 망각하고, 단 하나의 어색함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근래에 나눈 대화 중 가장 불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재미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얼마든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시나마 그의 밝음을 빌려온 기분이었다.
4.
아마 그는 내가 매우 성숙하고 견고한 사람이라 생각할것이다.
내가 그런 척했으니까.
5.
그는 그곳에서 거의 1년 가까이 일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학기에 새로 일하게 된 사람이었다.
매 학기와 방학에 10~20명의 사람이 들어오고… 다시 떠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스쳐 지나갔을까.
나도 결국 그중 하나일 뿐일까.
그래서 나의 용기가 그리 새롭지 않았을까.
전형적인 짝사랑은 늘 이런 식이다.
6.
당신은 왜 하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요?
차라리 영화는 그저 시간이 남아돌 때나 찾는 그런 거라고 하지.본 영화라곤 마블 시리즈나 베테랑, 극한직업 정도라고 그렇게 말해주지.
왜 나보다도 좋은 영화를 많이 알아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왕가위 감독이 좋아서 홍콩여행을 떠나는 그런 사람이었나요?
7.
그를 마주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도 안 되는 가능성으로 우연히 일하는 날짜와 시간이겹쳐야 했다. 그 우연의 시간은 일주일에 고작 하면 한 번, 많을 때는 두세 번. 운이 좋지 않으면 2주가 넘도록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가 없는 날에는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어렵게 얻은 대화는 노트북 두 대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짤막하게 이어가는 정도였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이름에 ~님을 붙여가며 존대하는 사이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어도 언제나 대화의 끝은
“고생 많으셨어요” 혹은 “다음에 뵈어요”였다.
그놈의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 의 벽을 넘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