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리 Dec 24. 2021

템플 그랜딘 Temple Grandin   

[어느 자폐인 이야기],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외

템플 그랜딘: 미국의 유명한 동물학자로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다. [어느 자폐인 이야기]와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나의 뇌는 특별하다] 등의 책을 집필했으며, 동명 영화 [템플 그랜딘]으로도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동물학자라는 타이틀보다는 성공한 아스퍼거로 더 유명한데, '세상은 왜 자폐를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TED 강연은 자폐 당사자로서 자폐를 보는 그녀만의 폭넓은 시각을 보여준다.
템플 그랜든 TED 강연  https://youtu.be/dN76zYLL8po




템플 그랜딘은 1947년에 태어난, 일흔을 훌쩍 넘은 할머니다.


템플 그랜딘에게 보이는 건 세월이 남긴 부드러움보다는 강철 같은 단단함이다. 앞뒤 살피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대단한 열정가. 그러나 그녀의 영유아기는 암울했다. 템플 그랜딘의 첫 번째 책 [어느 자폐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해 세 살 무렵부터 언어 치료를 받았고, 대단히 예민해 다른 사람들과 피부를 맞닿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심지어 엄마에게도 안기지 않았다. 충동적인 기질로 때때로 신경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말을 구사한 이후에도 이 같은 상황은 반복됐다. 신경 발작의 진짜 이유는 감각 문제. 템플은 청각, 시각, 촉각 외 전정기관과 고유수용성 감각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신경발달상의 이유로 갖가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촉각적 자극을 원하긴 했지만, 그 자극은 온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했고, 예상할 수 없는 강도의 자극은 고문과 다름없었다. 새 옷을 사더라도 일부러 헐겁고 낡고 닳게 만들어 입을 정도였으니까. 현실 세계의 자극을 적절하게 받아들일 수 없던 템플은 결국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압박기’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소를 진정시키는 압박기에서 영감을 얻은.


자폐 아동들은 어떤 자극에는 과잉 반응을 나타내는 반면, 또 다른 자극에는 과소 반응을 나타낸다. 최근 큰 소리에는 무심한 자폐 아동이 셀로판 종이를 구기는 소리에는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처럼 자극에 대한 과잉 반응이나 과소 반응은 자폐 아동이 들어오는 감각 자극을 통합할 수 없거나 어떤 자극에 관심을 보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자폐인 이야기]


아이러니하게도 템플 그랜딘은 이 같은 신경발달상의 차이를 오히려 자신의 재능으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한 신경적 문제에도 불구하고(개인적으로는 ‘덕분에’로 쓰고 싶지만) 시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가졌고 이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여기에는 인간의 감정에는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동물의 감정은 예리하게 캐치하는 비범한 재능도 있었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에서 템플은 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을 자폐인의 특별한 능력이라 고백한다.   


내가 소와 가까워진 것은 압착기를 사용해 불암감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로 줄곧 동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중략) 동물의 왕국에서는 공포가 보편적인 감정이다. 공포가 포식자를 피하게끔 하는 강한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폐인에게도 공포가 지배적인 감정이다. (중략) 내가 동물 다루는 일을 잘해 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동물의 행동과 자폐 행동의 유사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그녀가 가진 특별한 능력에 '고착'도 빠질 수 없다. 고착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주가 가능하다. 우리가 집착이라 부르는 행동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템플은 ‘자폐인들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들이 다룰 수 없는 여러 자극을 차단한다’고 설명하는데,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열망이 감각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누룰 수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게다가 특정한 주제에 대한 고착성은 오히려 의사소통을 위한 매개가 되기도 한다. 고착성을 긍정적인 방향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이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템플 그랜딘은 사회적으로도 성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많은 성향을 가진 건 맞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사회적 기술들을 학습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사전을 만들듯 하나씩 하나씩 상황에 맞는 행동과 말을 기억하다 보면 종국에는 가장 상위에 있는 사회적 기술, 유머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TED 강연에서 본 템플 그랜딘은 종종 우스개 소리를 던지며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진단은 바뀔 수 있고 아마 바뀔 테지만, 이제 우리 논의의 초점도 바꿀 수 있다. 신경과학과 유전학 발전 덕에 자폐증 역사의 3단계를 시작할 수 있다.(중략) 2단계의 사고방식에서는 “진단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자”라고 말한다. 3단계에서는 “진단은 잊어버려. 이름표도 잊어. 증상에 주목하자”라고 한다. [나의 뇌는 특별하다]


템플 그랜딘을 보면 자폐라는 게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폐는 뇌신경의 기능이 다른 이들과 차이가 난다는 데서 기인한다. 어쩌면 그건 커다란 의미의 다름 일지도 모르겠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듯,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과 사람보다 사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다. 인간이란 게 워낙 사회성을 중시하는 동물이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 것은 인정한다. 그럼 잘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면 되지 않나?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템플 그랜딘은 그 존재 자체로 가능성을 보여준다. 끝없이 무한한.


심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적 성향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과 과학적 발견을 가져온 재능과 천재성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뚜렷한 경계는 없다. 나는 자폐증, 심한 조울증, 정신분열증 같은 장애가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도 우리 유전자 안에 계속 남아 있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자폐아들이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고 일부는 기대하고 대부분은 바라고 있는 생각이나 기대가 비현실적인가요?


글쎄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그 아이는 충성스러울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당신의 집이 불타고 있다면, 당신을 탈출시키려 할 것입니다. / 자료 출처 TED





매거진의 이전글 그레타 툰베리 Greta Thunber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