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알람 없이 늦잠을 자고 있을 토요일 이른 아침.
작업복에 등산화, 방진복과 방진 마스크, 고무장갑, 반코팅 장갑 등 심상치 않은 준비물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타일 시공 수업의 첫날이었다.
올해는 그동안 한국 재료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루어두던 스페인 타일 작업을 더 늦기 전에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한국의 재료와 조건 안에서 최대한 가능한 방식을 찾는 것이 목표이고 그 동력이 되도록 올여름 관련 전시를 준비 중이다. 타일을 다시 시작하려니 시공까지 알아두면 쓰임과 활용을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타일 시공 수업을 신청했다. 아무래도 같은 주제의 환경과 가까이서 쓰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지기 쉬운 집중력을 더 붙잡아 둘 수 있을 테니까.
타일 시공이 여성에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역시나 강사님은 보자마자 여성분이 쉽게 하는 작업이 아니라며 겁을 주셨다. ‘못 한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라며 뒷말을 덧붙였지만 뭐 어렵지 않은 일이 있나. 그래도 반에 여성이 셋이나 있어 같이 서로 든든했다.
첫 수업은 타일 첫 장을 붙이기 위한 사전 작업과 첫 줄 붙이기였다. 못에 실을 연결하여 기준 선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세밀하고 까다로웠다. 타일이 붙을 벽과 타일의 틈 넓이가 넓으면 안 되고, 조금만 어긋나도 타일이 붙을수록 그 차이는 더 벌어질 테니 대충 하는 것은 아예 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꼼꼼한 타입은 아니어서 일의 정확도보다는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실의 작은 흔들림까지 기다리며 기준을 맞추는 일은 다소 나의 천성을 넘어서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그 천성을 거스르기 위해 강사님이 줄 맞추기는 꽤 잘한다고 툭 던진 진심인지 응원인지 모를 말을 나는 그냥 진심으로 듣기로 했다.
문제는 이 기준점에 맞춰 타일 첫 장을 붙이는 것이었다. 맞춰놓은 줄의 ㄱ자 모서리에 맞춰 첫 장을 붙였는데 아래쪽이 살짝 기준 선 위로 떴다. 다시 할까. 고민하다가 가로 세로가 맞으니 아래 높이 정도야 뭐 크게 상관있을까. 결국 거스르지 못한 천성이 눈을 떴다. 야심 차게 옆으로 죽죽 다음 타일들을 붙여갔는데 붙일수록 첫 장의 아래 떠있던 타일 때문에 전체적 수직과 수평이 어긋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은 다시 다 떼고 이미 한번 수분을 먹어 잘 붙지 않는 타일을 말려 다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오늘 배운 건 첫 장을 잘 붙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네요”
수업이 끝나고 혼잣말인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해.”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타일 시공이야 정확히 첫 장이 어디인지 안다. 그러니 잘못 붙였다 한들 그 시작이 어디인지 아니까 다시 그곳부터 시작하면 그만이다. 어느 첫 장을 잘 붙여야 할지 명쾌하다. 몸은 좀 고단하겠지만 회생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사는 일은 어디 그런가. 도대체 지금의 시간의 첫 장은 어디란 말인가. 회사를 그만두던 순간인가? 스페인을 가던 순간인가? 도자기학교에 입학하던 순간인가? 아니면 정거장이라는 작업실을 열던 순간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올해 새해를 시작한 날이 첫 장인가? 아니 아예 생이 시작되던 순간인가?
알 수 없다. 잘 붙고 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그걸 멀리서 조망해볼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다.
그러니 삶에 적용되는 ‘첫 장을 잘 붙여야 해’라는 말의 ‘첫’은 주관적이고도 어찌 보면 무용한 말일 수밖에 없다. 삶이란 이미 붙일 공간이 정해져 있어 처음과 끝을 채우는 타일 작업이 아닌 자꾸 그렇게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첫 장의 타일을 무수히 붙여가는 일일 테니까.
타일 붙이는 수업 하루하고 마치 삶의 문장 하나를 해석한 듯 혼자 끄덕끄덕이다가 다음 시간에는 꼭 첫 장을 잘 붙여봐야지 다짐한다.
언젠가 운이 좋아 작은 마당이 있는 내 공간을 가지게 된다면 마당 한편에 내가 직접 만들어 구운 타일을 직접 붙인 작은 타일 집 하나를 만들어 봐야지.라는 동화 같은 꿈의 첫 장은 어쨌든 지금 즈음 일 듯하니까. 그러니 이 첫 장은 잘 붙여봐야겠다.
그렇게 매일매일 첫 장들을 붙이다 보면, 그리고 이미 붙이고 있는 어느 타일의 몇 층쯤도 계속 올려붙이다 보면 일관되고 단정한 벽면은 아니어도 알록달록 꽤 흥미진진한 벽이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나는 개인적으로 단조로운 것보다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완성된 시간을 썩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