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부터 화실에 다닌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따듯한 봄이 오면 따릉이를 타고 도림천변을 따라 화실에 가는 장면을 실현해보기 위해서였다. 화실은 작업실에서 자전거로 30분 남짓. 너무 고생하지 않고 적당히 즐기며 자전거를 타기 좋은 거리였고, 가는 길도 천변 자전거 도로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이런 입지 조건이 나의 화실 라이프에 부채질을 안 했다고 할 수 없다.
3월에 되면서 화실 가는 날이면 아침마다 기온 체크를 하며 자전거 타기 적당한 날을 고르던 중 드디어 개시를 할 날이 왔다. 평소 지하철로 갈 때 보다 15분 정도 먼저 출발하면 화실 시간에 맞추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따릉이 화실 나들이 첫날. 오고 가는 길. 그 길 위에서는 나는 내내 좋았다.
자전거는 뒤늦게 익혔다.
겨우 광장 자전거 정도를 날 수 있었던 내가 생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것은 스페인에 가서였다. 스페인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자전거와 수영을 배운 일’이라고 말한다.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을 스페인에 가서야 배웠지만 늦는 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에라도 그 두 가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 대견하고 뿌듯하다.
서울에는 아직 따릉이가 없을 때 스페인 세비야에는 세비씨(sevici)라는 도시 자전거가 있었다. 평지인 도시의 특성상 자전거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고 자전거 도로도 잘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 도시에 살면서 자전거를 안 타면 섭섭한 일이었다. 가까이 지내던 한국인 부부가 귀국을 하며 자신들이 타던 자전거를 선물로 준 것이 계기가 되어 조금씩 자전거를 익혔고 그 사이 심하게 넘어져서 자전거는 망가졌지만 나는 세비씨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자전거 실력이 늘어 있었다.
‘따릉이 타고 화실 가기’ 장면을 연출하고 있자니 스페인 세비야에서 아침마다 자전거 타고 수영장 가던 때가 기억이 났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을 가고 있다니’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감동하며 즐거워했던 그 장면이 슬그머니 떠오르며 웃음이 났다. 얼마나 좋았던가. 아침 수영을 하고 오는 길에 단골 카페에서 여유롭게 앉아 먹던 아침 식사 역시 그 뒤를 잇는 나의 스페인 생활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삶의 명장면은 지극히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 속에 있거나, 뭔가 대단한, 그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경험을 하는 이벤트 같은 순간들보다는 일상이 일상으로 가장 잘 머물렀던 순간이다. 그만큼 이벤트의 장면보다 일상의 장면을 잘 만들어 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결국 그런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산다.
삶이라는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으니 그저 내가 마음에 드는 한 장면 장면을 어렵게 만들어 추가하는 것으로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세비씨를 타고 수영장에 가던 장면과 스페인 단골 카페 야외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장면과 따릉이를 타고 화실에 가는 장면들을 이어 붙이면 맥락을 알 수는 없는 어느 삶이 되겠지만, 내 삶의 예고편 정도로 만든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세 장면을 뽑아낼 것이다.
몇 안 되는 내가 사랑하는 삶의 장면을 위해 수많은 엔지 컷을 견디며 반복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부질없다고? 그래도, 그렇게 산다.
화실 동료들은 봄이 되었다고 너도나도 벚꽃을 그린다.
나도 봄맞이 따릉이 출근을 한 김에 벚꽃을 그렸다.
봄이 왔다.
이 봄에 건진 삶의 한 장면 덕에 봄 가운데로 훅 들어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