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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May 26. 2022

‘성실’이라는 이름의 태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999명이던 유튜브 구독자가 천명으로 올라있었다. ‘드디어천명.  십만, 백만도 아니고 천명에 그렇게 의미를  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격려한다. ‘고작 명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꾸준히 적어도 2주에  번은 포스팅을 하며 이어왔기 때문이다. 쉽게 성과나 결과가 보이는 일이 아닌,   나는 , 정확히 어떤 성취동기가 없는 일을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난 주로 끝난 타일기능사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3월부터 시작된 과정은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10번, 80시간을 꽉 채운 호락호락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니 13명이 시작해서 마지막 수료를 한 사람은 5명밖에 없었다. 타일 작업이 무한 반복인 데다 쉽게 늘지도 않는 일이라 어떤 명확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지속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겨울이 아직 남아있는 쌀쌀한 초봄에 시작해서 여름이 슬쩍 묻어나는 늦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과정을 마친 내가 그렇다고 뚜렷한 동기나 계획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과정을 다 마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안에 성실했던 나의 태도에 대해 나는 기꺼이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다.


나의 삶의 형태를 한 발짝 뒤에서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에게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수식어를 쉬이 붙인다. 얽매여 보이지 않고 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견디거나 버티는 일은 잘하지 않을 사람. 그렇게 휙휙, 가볍게 잘도 형태와 내용을 바꾸어 사는 듯 보여 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삶이나 과제를 대하는 나의 자세는 누구보다도 미련한 ‘성실’, ‘꾸준함’과 맞닿아있다. 이미 성공한 어떤 사람들이 그 성공의 기반이 그들의 성실에 있었다고 종종 말하곤 하는 것처럼 내가 ‘성실’하게 채우는 시간이 나에게 확실한 보상을 해주었다는 성공적 경험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체로 크게 어떤 눈부신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나는 꾸준히 하다 보면 뭐가 될 거라느니, 그런 시간이 결국은 더 값지다는 말들에 나는 쉬이 동의하는 편은 아니다. 살다 보면 오히려 어떤 운이나 요행들이 가져오는 결과가 더 화려할 때가 있고, 더 빛날 때가 있다. 그건 사실이다.


“성실이 미덕인 시대는 아니지”

종종 지인들과 하는 말이다.


성실하면 왠지 손해 보는 듯 한 시대. 요령껏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것이 미덕인 시대. 심지어 나의 성실이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기도 하는 시대.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성실한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 성실은  무엇을 바라는 일도, 남기기 위한 일도 아닌 그저 태도의 문제이다. 성실하게 일도 하고, 선택도 하며 성실하게 자유롭기도 하다. 성실했기 때문에 다음의 시간으로 또 성실히 나아가고, 그렇게 마무리하며 또 다음을 살아간다.


결국 성실함이란 나에게 사는 일이다.


그 성실에 기대는 것이 있다면 삶에 어떤 요행이, 혹은 불행이 불현듯 온다 해도 나의 성실함이 너무 그것에 요동하지 않도록, 그렇게 또 하루를 그냥 꾸준히 나아가도록 지켜주지 않을까하는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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