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9
스페인 살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나는 노트북 바탕화면에 새 폴더 하나를 만들었다. 폴더의 이름은 '50만 원 프로젝트'였다. 한국을 떠나올 때 '가산탕진'이 목표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니 생계형 밥벌이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버리지 못하는 노동에 대한 습성이 올라온 탓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뭔가 일을 하거나 진행을 할 때 ‘poco a poco 뽀꼬 아 뽀고(조금씩)’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맨날 천천히, 조금씩을 말하는 것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했는데 한 편으로는 시간을 버는 일, 호흡을 늦추는 말이라 나도 종종 사용하게 된 말이기도 하다.
나의 ‘50만 원 프로젝트’는 ‘poco a poco’ 프로젝트라 불러도 될 듯싶다. 본격 취업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뭐든 하자’ 정도의 절실함은 없으니 하고 싶은 일들을 만들고 찾아보며 과연 50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50만 원이면 유로로 당시 350유로가 조금 넘는 돈이었다. 월세를 해결하고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고 약간의 배울 거리를 해결하기에 적당했다.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
첫 시도는 한국어 수업 전단지를 자주 가는 바에 붙여보는 것이었다. 혹 한 두 명이라도 한국어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스페인에 오기 전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원자격 과정도 수료해 두었었다. 한 달 남짓이 지나 정말 한 명의 학생이 생겼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을 인터넷으로 보고 관심이 생겼다는 대학교 1학년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남학생이었다. 첫 제자였다. 그 제자는 그렇게 꼬박 4년을 나에게 한국어를 배웠다. 그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동네의 아시아 언어 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의 지인이 한국어를 개설해 보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고 시범적으로 학생을 모아보았는데 무려 13명의 학생이 모였다. 대부분 K-POP을 좋아하는 20대 여학생들이었다. 그렇게 직장 아닌 직장을 얻었다. 수업 수도 조금씩 늘어 일주일에 이틀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상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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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기에 그곳에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 있었지만 또 반대로 한국인이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조금씩 늘어난 한국어 수업이 그랬고, 예술학교 도자기 역사 수업에서 교수님의 부탁으로 한국도자기를 한 시간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랬다. 친구가 근무하는 고등학교 요리 전공 친구들에게 한국음식 특별 강의를 했던 것도 나에게는 한국에 있었으면 기회가 없었을,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기에 가능했던 삶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의 50만 원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poco a poco’(조금씩) 작은 폴더 속 실험들은 다양한 일거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해외통신원으로 글을 쓰고, 방송 코디 일들도 하게 되면서 어느새 50만 원이라는 목표액은 여유 있게 넘어섰다. 5년 넘는 스페인 살이에 '가산탕진'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게을러 보이고 느려 보였단 말 ‘poco a poco’는 일단 시작을 한다면 그리고 그 ‘조금씩’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은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속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