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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Mar 07. 2021

'소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때

전시장을 찾아온 동생이 내가 독립 출판한 책의 서문을 펴보다 말한다.


"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누이 이거 그때 그 영화잖아요."


그때!

그 때라 함은  20대 후반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던 때, 퇴근 후 신촌 근처의 한 공간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듣고, 주말이면 함께 카메라를 메고 나서던 때. 장비도 어찌나 무거웠던지 전설의 SONY VX1000(지금은 박물관에나 갈 법한)을 들고 폼을 잡던 그때.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샅샅이 영화제를 다니고 반짝이는 작품을 발견하면 함께 흥분하던 때, 그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동생도 나도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있지는 않다.


"그때 그 영화 보고 쿠바에 빠져서 쿠바 영화제에서 '소이 쿠바' 같이 봤잖아요. 강남의 무슨 영화관이었는데. 그때는 누이도 나도 '소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잖아요. 하하." 


그러네. 그 영화관 이름이 뭐였더라. 강남이었나 신사동쯤이었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관에서 본 '소이 쿠바'(Soy Cuba, 나는 쿠바다) 다큐멘터리는 지금은 흑백의 영상들과 내레이션의 느낌만 기억날 뿐이지만 정말 충격적으로 멋졌다. 1960년대 작품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가슴에 콕 박혔었는지, 영화를 보고 영화학과 수준이 높다는 쿠바 아바나 대학교 영화과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동생의 말처럼 정말 그때 나는 쿠바가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라는 것, '소이'가 스페인어 동사 '이다(SER)'의 1인칭 단수 변형이라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랬다.


시간은 이렇게 흐른다. 한때 열망하던 것은 어느새, 일부러 끄집어내지 않으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냥, 어딘가 꽁꽁 숨어 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느닷없이 소환되어 오늘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하나의 반짝이는 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생이 소환해 준 '소이 쿠바'의 시간이 반갑고 고마웠다.


한때 '소이'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쿠바를 동경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겠다던 20대의 나는 이제 '소이'가 무슨 말인지를 가르치고, 카메라 대신 흙으로 이야기를 빚는 사람이 되어 있다. 같은 꿈을 같은 시간에 꾸던 동생은 오랜 시간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다. 그 가운데 나는 종종 흙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길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동생은 교사를 하며 만나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영상으로 남긴다.


꿈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삶의 한편에 걸쳐진 채 나이 들어가는 것이 문득 안심이 된다. 그것으로 이 꿈은 오래된 지나간 꿈이 아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꿈일 거라고, 언젠가 그 꿈이 다시 전면으로 나올 때는 조금 더 영리하게 마주해볼 거라 생각해 본다.


뜬금없이 동생은 말한다.

“누이, 나는 요즘 해초를 키우며 살고 싶어”

무심하게 나는 말한다.

“그래? 그럼 해초를 키우는 다큐멘터리를 찍어 보는 건 어때?”


현재인지 과거인지 그 시간을 알 수 없는 꿈들을 켜켜이 쌓으며 내일을 상상하는 일, 제법 괜찮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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