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 6강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방구석 1열' 다시 보기를 보는데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이 인용되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 “꽃은 피었다”라고 썼다가 다시 “꽃이 피었다”로 고쳤다는 것이다. 김훈 소설가의 간결하면서도 응축되어있는 문장을 이야기하며 ‘은/는’과 ‘이/가’의 차이를 예민하게 드러내고 선택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뭐가 다른가?
그 뉘앙스의 차이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다른 관점이 있을 것이다.
정답이라기보다는 가능성 혹은 선택의 문제인 경우가 많은 ‘은/는’과 ‘이/가’, 그 첫 고비가 드디어 한국어 수업에도 다다랐다.
‘이다’ 동사로 첫 문장을 가뿐히 만들고 한국어 해볼 만하겠어.라는 재미가 생기려는 순간 ‘이다’의 부정 ‘아니다’를 배우며 학생들은 혼란에 빠진다. 바로 ‘~이/가 아니다’ 문형에 등장하는 골치 아픈 조사 ‘~이, 가’ 때문이다.
우리는 별생각 없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용하는 조사인 ‘은/는’과 ‘이/가’ 사이를 설명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경우는 존재하지만 명확한 기준으로 세울만한 근거가 없다. 정확한 블록으로 두 개가 분리되진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언어 수업에서 가장 책임 없으면서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 ‘그냥 외우세요’로 끝나는 대표적인 문법 중 하나이다.
이전 시간까지는 해맑던 친구들의 얼굴이 점점 근심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고 어떻게든 다양한 예와 상황을 비교하며 설명을 해주었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그 많은 경우에 더 머릿속이 복잡해진 표정이었다.
“나는 마리아예요”와 “내가 마리아예요”를 비교해 보면 중요한 정보의 포인트가 옮겨간다. 첫 문장은 ‘마리아’라는 정보가 우선하는 느낌이라면 두 번째 문장은 ‘나’가 우선한다. ‘다른 사람 말고, 내가 마리아라고!’ 이런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첫 문장의 ‘나는’은 경우에 따라 없어도 상관없지만 뒷 문장의 ‘내가’는 그럴 수 없다.
아하!
생각보다 간단하네.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구분의 경우가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초급 단계에서 그 예들을 모두 문장으로 보며 구분하기는 어렵기에 일단 대부분의 의문은 보류하는 것으로 조금 섭섭하게 결론이 난다.
언어는 수학공식처럼 어느 틀 안에 정확하게 들어가 정착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예외와 가능성들이 틀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는 것을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비로소 알게 된다. 모국어 역시 그러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 미처 못 느끼던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언어는 왜 이렇게 예외가 많아?”라고 종종 투덜대지만 '이 언어' 뿐 아니라 '그 언어도'도, 그렇게 모든 언어가 마찬가지다. 결국 가장 무책임한 해결안인 ‘그냥 외우세요’가 언어 공부에서는 종종 가장 적절한 해답인 이유는 거기에 있다. 배울 때는 고통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예외들, 틀 밖에서 서성이는 요소들이 결국은 언어의 재미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틀에 걸쳐져 서성거리는 ‘나는’과 ‘내가’를 조금씩 주워 담아 김훈 소설가의 문장처럼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굳이 선택하여 소설의 첫 문장을 고쳐 적는 미묘함 까지는 아니어도 의지에 따라 둘 사이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언어 공부의 다음 단계에 이르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분, 일단 외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