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 7강
“아홉? 아호(ajo 스페인어로 마늘)를 생각하세요”
아마 한국 친구들에게 말했으면 찬물 한 바가지 부은 듯 싸해졌겠지만 이런 다소 아재 개그 같은 말에 학생들이 한바탕 웃는다.
숫자 공부는 초급단계에서 하게 되지만 참 오랫동안 익숙해지지 않는 영역이기도 하다. 나 역시 스페인어 숫자를 자연스럽게 쓰고 알아듣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동그라미가 많은 숫자는 써주지 않으면 바로 감을 잡기가 어렵다. 뭐 이건 한국어로도 마찬가지지만.
숫자를 외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모국어에서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연상하기도 하고, 리듬을 타며 외우기도 한다. 초반에는 숫자 하나 이야기하려면 1부터 외우며 해당 숫자가 뭐인지를 찾곤 한다.
사실 숫자는 읽거나 말을 하지 못해도 쓰기로 해결이 되는 영역이기도 해서 그렇게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거의 세계 공통 표기라 할 수 있는 아라비아 숫자가 우리에게는 있으니까 말이다. 답답하면 쓰면 그만이다. 그렇게 복잡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할 일이 아닌 이 숫자가 한국어에서는 두 세트나 존재한다. 한자 숫자와 한글 숫자 혹은 오리지널 숫자와 세는 숫자로 구분되는 세트이다. ‘일이삼사...’와 ‘하나 둘 셋넷..’의 차이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이 두 숫자 세트를 모두 쓰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어떻게 역할이 나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복잡한 구분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수학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던가. 어찌 보면 숫자의 문과적인 사용 역시 뛰어난 것이 아닐지.
“나이는 세는 수? 오리지널 수?”
“날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사이에서 하나하나 구분을 해가다가 마침내 다다르는 종합 숫자 세트가 바로 시간이다.
“한국어로 시간을 이야기할 때 시와 분에 쓰는 숫자가 달라요”
뭐라고요?!
한국어를 가르치기 전에는 시간의 시와 분이 다른 숫자로 읽힌다는 것을 의식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쓰고 있던 말이니까. 분명 언젠가 나도 배운 것일 텐데 말이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시계 읽는 법을 배웠던 거 같긴 한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도 지금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들처럼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었을까.
두 세트의 숫자를 낑낑거리며 외우며 더듬더듬 시계를 읽어가는 학생들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을 때 숫자 이야기는 삐삐 언어로 마무리된다.
8282 빨리빨리
1004 천사
1010235 열렬히 사모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십 대들에게 삐삐 문화 소개라니. 이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 소개란 말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숫자로 만드는 단어들은 유난히 한 음절 숫자 단어가 많은 한국어이기에 조합하여 다른 단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재미있는 창조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과 같은 톡의 시대에 자음과 모음이 조합된 글자이기에 초성 언어가 유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학생들이 굉장히 흥미로워한다는 거다. 복잡한 숫자 공부가 친숙한 마늘에서 시작해서 뭔가 새로운 숫자 언어의 세계를 만나는 것으로 끝났으니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그럼
20000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