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 8강
‘딩동’ ‘딩동’
토요일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메신저가 시끄럽다. 시차가 있다 보니 그나마 시간 계산을 한다 해도 콜롬비아의 저녁 시간대에 대충 맞춰 보내는 톡은 휴일 오전 단잠을 깨우기 일쑤다. 밤에 수업이 있으니 수업 전에 뒤늦은 숙제 벼락치기를 하는 것이다. 난들 안 그랬을까.
오프로 수업을 할 때면 일일이 수업시간에 페이퍼로 숙제를 받아서 그걸 다음 시간까지 체크해가는 것이 또 일이었는데 온라인을 하다 보니 사진을 찍어 보내는 페이퍼에 틀린 부분을 표기하는 것이 일이다. 수고를 좀 덜어볼까 하고 패드를 하나 샀는데 어이없게도 노트북 사양과 맞지가 않아 무용지물이 되었다. 핸드폰 사진 편집을 이용해 둔탁한 손 터치로 체크하고 틀린 부분을 일일이 타이핑해야 하니 효율 제로이다. 비대면 시대에는 장비가 수업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또박또박 써 내려간 한글로 보내오는 숙제를 보면 주말 휴식을 방해하는 숙제 폭탄이 힘들지만은 않다. 학교 다닐 때 숙제 검사를 하고,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벌을 받고, 직접 성적과 연결이 되고, 이런 의무감으로 강제되어온 숙제가 아닌 자율적 숙제를 마음을 내어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스페인어 공부를 할 때 종종 선생님들이 내어주는 숙제를 바쁘다는 핑계로 안 할 때가 많았다. 취미로 하는 일에 뭐 그리 숙제를 많이 내어 주냐고 툴툴거릴 때도 있었다. 숙제를 안 해가도 별다른 불이익은 없으니 수업시간에 선생님 보는 것이 조금 죄송한 것 빼고는 상관없다 생각했다. 이제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숙제를 내어 주다 보니 의무감 없는 숙제하는 것은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간을 내는 일이라 실력보다는 태도와 연결된다는 것을, 그 태도가 쌓이면 실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와 직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이후 ‘누군가에 의한 의무의 과제’는 삶에서 거의 없다. 대부분 스스로 내는 자율적 과제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굳이 어려운 과제를 잘 내지 않는다. 가능하면 많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문제 풀이의 범위가 대체로 눈에 보이는 선에서 문제지를 만든다. 굳이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힘들 필요가 있겠어? 못 풀어서 실망할 필요가 있겠어? 이런 소극적 안전장치가 익숙해진 것이다. 그 또한 크게 나쁠 일인가. 싶다가도 때로는 어려운 숙제를 하며 넘어서고 발견하는 삶의 확장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안전한 테두리를 지키며 평화만을 추구하는 것이 맞을까. 싶기도 하다. 숙제 없는 삶은 가볍지만 한 편으로는 뭔가 허전한 것. 가벼움과 허전함 사이에 적당한 긴장이 아쉬운 것일까.
딩동!
“선생님. 내 숙제예요”
배운 한국어 문장으로 쓴 문자와 함께 숙제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온다.
몇 번을 고심해서 썼을 한국어 문장들이 꼭꼭 눌러쓴 종이 위 글자 위에 담겨있다. 한국어가 좋아서, 잘하고 싶어서 숙제를 하고, 선생님에게 톡을 보내는 마음을 보고 받는다. 누가 하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낸 숙제의 시간들이 쌓이면 분명 삶은 한 뼘 정도 확장될 것이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보내오는 숙제 폭탄을 맞으며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마음을 내어 풀 숙제를 던져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숙제를 또박또박 풀어나가는 일이 내 삶의 테두리를 한
뼘 정도 넘어서게 한다면 좋겠다고.
결국 그 누군가는 나일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