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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망퇴직 or 절망퇴직

14년차 이커머스 노동자가 정의하는 "희망"의 의미

by 오늘

2024년 7월 초 어느 금요일의 오전, 급하게 소집된 회의.


"다들 짐작했겠지만, 곧 인사에서 전체 공지가 올거야.

희망퇴직 신청을 받을거고, 근속연차에 따라 보상수준이 책정될거야.

다들 열심히 한 거 알고 있어, 우리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야. 공지 보고 잘 들 고민해봐."


그리고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인사조직의 공지와 CEO레터가 순차적으로 메일함에 들어왔다. 누구도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았지만 여느 때 보다 시끄러운 오전이었다. 고요한 소란 속에도 밥 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가장 헤비(Heavy)한 점심시간이었다.


2024년 연초부터 알리/테무/쉬인을 필두로 하는 C-Commerce의 위협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서,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E-Commerce M/S(Market Share)를 얘기할 때 국내 종합몰/오픈마켓/소셜커머스/버티컬 플랫폼으로 구분했던 때는 지나가고 말그대로 국가, 지역 경계가 없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C커머스의 거대 자본 기반의 가격경쟁력과 환불/반품 정책은 구매경험에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을만큼 매력적인 수준이었고,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실패한 구매경험 역시 "오히려 좋아!" 콘텐츠 소재가 되고 있었다. "테무에서 산 OOO"같은 밈이 대중화 될 만큼.


이런 상황은 고객에게는 신세계, 국내 이커머스 기업에게는 사상 최악의 위기였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3高시대"에 고객의 지갑은 닫혀가고, 이커머스의 성장둔화에 경쟁심화까지 겹치면서 서비스 차별화에 눈을 돌리던 기업들은 결국 비용 리스크에 수익 중심의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략보고서를 쓰고, 시장분석을 하던 나의 업무. 덕분에 돌아가는 상황은 읽었지만 그 여파가 나한테까지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약 14년차, 마흔을 목전에 앞둔, 유통 대기업 이커머스 과장. 나같은 소시민에게 이 시장상황에 가져다 준 희망퇴직, 과연 ... 희망일까 절망일까.


[희망 希望]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또는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모두가 열심히 했을 뿐이었고, 결과가 좋지 못했다.

물론, 이 희망퇴직의 주요 타깃이 "아직은" 내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조직 내에서 그렇게 높은 연봉수령자가 아니었으며, 다행히도 꽤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었으니. 회사에 비용리스크를 해결해 줄 해결사도, 모두가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나의 마지막을 희망하는 것이 내 인생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의 시간은 2주.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괴로운 2주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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