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리듬과 템포 정하기
떡볶이 러버. 쌀떡 앞에서 시무룩해질만큼 밀떡을 선호한다. 단골 떡볶이 가게에서 밀떡 구매 공장을 바꿨을 때, 달라진 떡의 식감에 곧장 마음이 서운해져버렸다.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꼭 원하는 떡의 식감과 양념의 농도를 가진 새로운 떡볶이 가게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첫사랑처럼 영영 잊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떡볶이 포장마차도 있다. 없어진 지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내 마음 속 1등인 그 곳. 쫀득하고 말캉한 식감의 통통한 밀떡에 고운 고춧가루, 춘장, 물엿이 적당한 농도로 어우러져 양념이 기막히게 맛있었다. 이 떡볶이의 킥은 대파.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자른 대파가 양념에 녹아들며 감칠맛과 향을 배가 시켰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후 그 어떤 떡볶이도 내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한다. 그 가게는 사라졌지만 내 혀가 그 맛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어떤 떡볶이가 좋아?"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다. 떡볶이의 단짝인 튀김의 취향까지 언제든 줄줄줄 읊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떡볶이만큼 너를 잘 아니?"라고 과거의 나에게 묻는다면, 글쎄다.
나는 비교적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며 나의 내면을 마주할 기회가 많았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를 묻고 또 물었다. N잡러로 난리통이 나기 전부터 생계수단의 업과 자아실현의 업을 분리하며 살줄도 알았다. 전문적으로 코칭 공부를 시작하면서 수시로 자기탐색이 이어졌다.
그래서 착각하기 쉬웠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는 소홀했다. 내가 집중했던 건, 그저 나의 커리어적 성과와 성취뿐이었다. 게다가 요령 없이, 나를 위한 영광을 누리는 일에는 뒷짐을 지고 딴전을 부렸다. 남 좋은 일 시키기가 특기인 시절이자 미련곰탱이 같던 시절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일했을까? 나는.
요양생활이 시작된 후 1년 동안은 나를 열렬히 미워했다. 넘치는 시간동안 과거를 곱씹으며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만남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아팠다. 결과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 건 모두 나였으니까. 마음에 한껏 생채기를 내고나니 비로소 과거의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인정하면 용서할 수 있다.
나 자신과 화해한 다음 요양 생활에도, 내 삶에도,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떡볶이에 진심이듯 내 자신에게도 진심인 삶을 살고 싶어졌다. 떡볶이를 사랑하는 만큼만이라도 나를 사랑하고 싶어졌기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큰 질문부터 던졌다. 질문과 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 닿은 질문. '어떤 태도와 속도로 하루를 살고 싶은가?'
"다정하게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이것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삶의 태도와 속도다. 세세하게 따지고 드는 떡볶이 취향만큼이나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다정하고 어슬렁거릴 것인가를.
'희귀병 환자'라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다정함. 오늘의 다이어트를 내일로 미뤄도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다정함. 일하는 나, 일하지 않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다정함을 유지하려 한다. 이어 다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생활의 속도를 낸다.
그러니까 일과 쉼의 모든 기준은 ‘스스로에게 다정할 수 있는가, 어슬렁거리며 살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정해둔 제한 속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 활동은 어슬렁거리며 속도를 줄일 수 있는지 묻고, 그렇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버린다. 분명한 삶의 기준은 명확한 떡볶이 취향만큼이나 작고 확실한 행복을 준다.
생활력 트래커를 작성할 때도, 나만의 태도와 속도가 기준이 된다. '다정하게 그리고 어슬렁거리며'를 실천한 하루였는지를 되돌아보면 되기에. 당연히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때에도 도움이 된다. 어떤 활동에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쓸 것인가를 고민할 때, '다정하게 그리고 어슬렁거리며'를 기준으로 삼으니까.
번아웃이 목까지 차올랐는가. 무기력함에 허덕이는가. 바닥난 에너지가 채워지질 않는가. 성실함과 빨리빨리에 취해 살고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태도와 속도로 하루를 살고 싶은지 물어라. 그런 다음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삶의 태도와 속도를 정해라. 어떤 떡볶이가 좋은지, 어떤 치킨이 좋은지를 생각하듯 가볍게.
그러고 보면 나다운 삶의 태도와 속도를 정하는 일 즉,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삶의 기준을 정하는 일은 단골 떡볶이 가게를 정해두는 일과 닮았다. 쓸데없이 방황할 필요가 없고, 언제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며,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