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갓생을 사는 법
부정할 수 없다. '갓생'은 지금 가장 핫한 신조어이자 생활 방식. MZ세대가 특히 열광한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GOD(갓)에 인생을 뜻하는 생을 합친 말.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으며, 매일 작은 성취를 이루는 삶을 말한다.
갓생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작은 목표를 촘촘히 연결해 틈새 시간까지 낭비 없이 알차게 보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
계획된 시간에 일어나 5분간 명상을 끝낸 후, 10분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한 후 아침을 먹고, 다시 30쪽의 책을 읽는 것. 이동시간에는 휴대폰 앱을 정리하거나 다음의 계획과 루틴을 점검한다. 정해진 일과가 끝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루틴을 실행한다.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언어 공부를 한 후 일기를 쓴다. 오늘의 갓생을 SNS에 인증한다. 마지막으로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세세한 실천사항은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큰 흐름은 같다. 한마디로 갓생은 눈 코 뜰 새가 없는 것.
갓생은 과거의 자기계발과 다르다고들 말한다. 자기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시간을 쓰고, 자기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정말 그럴까?
한 끗만 다르다. 자기계발은 남들이 좋다고 외치는 목표를 따라 하기 바빴다. 목표도 원대했다. 반면 갓생은 내가 원하는 작은 목표를 따른다. 그 뿐이다.
결국 지향하는 바는 같다.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생산적이고, 효율적이고, 부지런한 삶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너도나도 자신 있게 갓생을 외치지만 혹독하게 번아웃을 경험한 나에게는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갓생 번아웃 주의보'를 발령하고 싶어진달까.
좋은 점만 남기자. 갓생에 어울리지 않는 세 가지를 없애버리자. 첫째, 생산성, 둘째, 효율성, 셋째 부지런함! 그리고 묻자. 오늘의 할 일을 끝낸 후 SNS에 인증하며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나를 위한 성취이며 만족감인지. 혹시나 보여 주기식의 '가짜 만족'에 속고 있는 건 아닌지. 나의 작은 성장을 음미할 새 없이 그저 '했다'는 기분에 취해있는 건 아닌지를.
또 묻자. 나에게 실망하는 상황이 싫어 힘들어도 꾸역꾸역 '갓생러'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주변에서 너도나도 '갓생 살자'를 외치니 덩달아 휩쓸리며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나는 생산성, 효율성, 부지런함을 뺀 ‘나만의 갓생’을 사는 ‘갓생러’다. 기준은 다정하게, 어슬렁거리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삶의 태도와 속도에 맞췄다. 세 가지 루틴을 정해놓았다. 아침 루틴, 저녁 루틴,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버리는 루틴!
아침 루틴은 두 가지.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한다. 심각한 우울감에 빠져 씻기를 거부한 전적이 있기에 '샤워하기'를 떠올리면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다. 하여, 싫은 마음이 먼저 떠오르지 않도록 샤워 순서를 정해두었다. 들어가자마자 양치질을 한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일을 기계적으로 실행한다.
제일 먼저 씻기를 실행하는 이유가 있다. 샤워를 하고 나면 의지력이 생긴다. 1월 1일이 되면 한 해를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드는 것처럼, 아침 샤워를 하면 새로운 하루를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샤워 후에는 폼롤러 위에 누워 스트레칭을 한다. 이 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 감상을 겸한다. "스트레칭 싫어, 운동 싫어."를 외치고 싶은 마음을 속인다. 효과가 있다. 자꾸만 더 긴 음악을 선곡하는 나를 보면 그렇다.
저녁 루틴은 '기록'에 초점을 맞췄다. 기록을 하는 이유는 가짜 기억에 의존하지 않고 정확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먼저 하루치 약을 잘 복용했는지를 체크한다. 다음으로 <해빗 트래커>를 색칠한다. 작은 칸이 알록달록해지는 맛이 좋아서. 이어 내일의 할 일을 <위클리 플래너>에 쓴다. 이를 바탕으로 <생활력 트래커>에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쓸 지를 미리 정하고 소진되는 활동과 충전되는 활동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감사 일기를 쓴다. 이 모든 단계는 짧으면 5분, 길어도 10분 이내로 마무리 된다.
기록한 결과를 차근차근 살피면, 나를 잘 돌보는 하루였는지, 그렇지 않은 하루였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거짓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폭발하는 도파민에 중독돼 미련하게 나를 채찍질 하지 않는다는 말. 그저 "내가 해냈음"의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기록을 하면,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사라지고, 하루의 시작과 끝, 그 경계가 분명해진다. 의미 없이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는 루틴은 나를 괴롭고 불안케 하는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었다. 몹쓸 생각이 나를 잠식하려 들 때, 그 즉시 "뭐 먹지?"를 생각한다. 대체로 차단되는 편인데, 소용없는 경우에는 이렇게 되묻는다. "근거 있어?" 대체로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생각의 불씨에 상상의 기름을 들이붓는다면 이렇게 외친다. "어쩌라고!" 가끔은 "어쩔티비"라고도 내뱉는다. 피식 웃음이 나고, 상황은 종료된다.
루틴은 매일 반복되면서 힘을 얻는다. 하지만 반복이 중단되더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루틴은 그저 나를 잘 돌보기 위한 점검 요소일 뿐이기에.
과거엔 나도 그랬다. 샤워를 하지 않고, 약을 먹지 않고, 기록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 하루를 산 나에게 실망했고 또 자책했다. 새로운 아침의 '갓생'을 실패하기 싫어서 없는 에너지를 쥐어짜내며 무리했다.
걱정해야 한다. 루틴이 반복되지 못하면. 왜 그런지를 염려하며 나를 더 꼼꼼하게 돌보아야 한다. 생활력 레벨이 낮아진 원인을 찾고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
‘나다운 갓생’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집사가 고양이를 애틋해하듯, 최애를 덕질 하듯 나를 돌보는 루틴을 그저 실행하는 일. 나만의 리듬과 템포에 맞춰서 말이다. 생산성이 없어도, 효율성이 없어도 오케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충만한데.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