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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Oct 24. 2022

완벽주의와 헤어지려고, 직접 머리카락을 자릅니다

나의 라이프콘텐츠 휴식법을 소개합니다 ③

정말로 몰랐다. 내가 완벽주의자였다는 걸. 새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를 잘못 쓰면 그 다이어리는 연습장으로도 쓰지 않았다. 처음부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고쳐가며 글을 썼다. 자료를 찾고 또 찾는 게 특기였다. 주말의 계획이 처음부터 틀어지면 수정 없이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목표가 지켜지지 않으면 크게 자책했다. 한 번 시동이 걸리면 무섭도록 질주하지만, 시동을 걸기까지의 준비 시간이 길었다.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알았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해서, "대충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면서 바꾸면 되잖아."라고 말하면 두 눈이 커지고, 심장이 뛰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진짜? 생각이 바뀌었어. 이렇게 하자."라는 말에는 인류애를 상실했다.

 

열심히 했다. 응당 일은 열심히 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책임감은 또 어떻고? "당신이 적임자야.", "일을 잘 하시니까요."라는 말에 홀려 온 힘을 다해 덤볐다.

 

우연히 읽게 되었다. 완벽주의자에게 주로 번아웃이 온다는 기사를. 첫 문장부터 내 얘기로 시작해 마지막 문장까지 내 얘기로 끝이 났다. 그 날로 완벽주의와 번아웃을 키워드로 한 관련 자료를 부지런히 찾아 읽었다. 결론이 났다. "나, 완벽주의자였잖아?"


이 깨달음이 시초가 됐다. 요양인이 됨과 동시에 내가 왜 인생이 망했다고 단정 지었는지 단번에 납득되었다. 왜 번아웃이 올 수 밖에 없었는지도. 그러니까 '희귀병 환자'가 되는 건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번아웃은 내 삶의 오점처럼 느껴졌기에 유독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질 못했던 것.


완벽주의자는 늘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산다. 계획이 틀어지는 걸 견디지 못한다. 실수 없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늘 자기 자신을 채찍질한다. 만족을 몰라 스스로에게는 칭찬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칭찬은 기대한다. 힘을 뺄 줄 모른다. 모든 일에 진심으로 덤빈다.



거꾸로 살아보자.

완벽주의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리의 결과였다. 실수하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기. 계획에 어긋나면 박수치기. '강강강'이 아닌 '강약 중간약'으로 힘 조절 해보기. 글자를 틀리게 쓰면 틀린 글자 위에 두 줄을 긋고 새로 글쓰기. 매일 틀리기 위해 피아노 학원에 가기. 그리고  직접 머리카락을 잘라보기.



새로 산 문구용 가위를 찾아들고 거울 앞에 섰다. 충동적으로 앞머리를 자른 후 몇 날 며칠 스스로를 책망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이번엔 앞머리가 아닌데 후회하지는 않을까? 기특하게도 내 마음은 이렇게 답했다. "끽 해야 머리카락일 뿐. 다시 자랄 테니 괜찮아."


최악을 상상해서 그랬을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보다 더 괜찮았다. 처음이라 좌우 머리카락의 길이가 달랐는데도, 귀 밑까지 머리가 짧아졌음에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삐뚤빼뚤한 커트라인도 마음에 들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염색한 머리에 까만 머리카락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견디지 못해 미용실로 달려갔고,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땐 미용실에서 완벽하게 머리를 만지고 갈 정도로 '헤어스타일'의 완성도를 의식하던 나였기에.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양쪽 머리카락의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머리끝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 멋대로 잘렸다는 것을. 도리어 그들이 되물었다. "진짜 직접 자른 거 맞아? 티가 하나도 안나."


물론 티는 난다. 전문가의 솜씨일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의 결과가 의외로 만족스러웠다는 점이 계기가 되었다. 완벽주의자에서 탈출할 계기. “완벽한 떡볶이를 먹고야 말겠어.”라고 비장하게 다짐하다, 내 취향의 떡볶이가 아닐 때 나는 크게 좌절했다. 정말 별 일 아닌 일에서조차 늘 자처해서 ‘실패’을 맛보았다.


대충대충 살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완벽주의자를 늘 따라다니던 ‘불안감’이 사라지자 세상만사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세상엔 그냥 떡볶이와 내 입맛에 맞는 떡볶이가 존재할 뿐, 완벽한 떡볶이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완벽한 헤어스타일도 없다. 그저 내가 자른 머리와 남이 자른 머리가 있을 뿐.


"내 머리도 직접 자르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시작해보는 일이 늘었다. 계획에 어긋나더라도 '머리칼을 다시 다듬듯'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내 인생에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는 일에는 힘을 좀 빼보기로 했다. 용모를 단장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다른 일을 할 때 보태는 게 더 좋겠다는 판단에서.


새 달이 시작되면 가위를 든다. 이번 달로 벌써 15번 째,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있다. 전문가도 아닌데 '적당히' 흡족한 결과물을 내며, 나는 '절대, 무조건, 반드시'라는 단어와 헤어지는 중이다. 대신 '대충 이 정도면'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 들여 공존하고 있다.


완벽주의와의 결별 소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오히려 좋아!”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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