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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Oct 22. 2022

무기력, 매일 '기록'하면서 극복했습니다

나의 라이프콘텐츠를 소개합니다 ②

"오늘 점심을 먹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순간 무엇을 먹었는지도 떠올리지 못했다. "오늘 무슨 요일이지? 달력을 봐도 한참을 헤매었다. 요일과 날짜의 감각에서 멀어진지 한참 되었기 때문. 해가 뜨든 말든, 계절이 바뀌든 말든 나와 상관없는 듯 보내던 시절이었다. 무기력이 나의 삶을 관통하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무엇을 먹었고, 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면 어떤가. 어차피 똑같은 매일이 반복될 뿐이고, 나는 아무렇게나 살고 있는데.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내가 사라지고 있었다. 오늘이 어제 같은 일상이 계속되면서. 나의 삶이 희미해지면서 내 자신도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조차 나를 잊어가고 있었다. 맙소사! 위기감이 들었다. 당황스럽기도 했다. 막 살기로 했지, 내가 없어지는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니까.



일단 썼다. '하루를 붙잡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누렇게 종이색이 변해버린 쓰다만 몰스킨 유선노트를 꺼내들었다. 노트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놀랐다. 그 당시 좋아했던 작가의 말과 글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과거의 내가 남긴 흔적이었다.


소설이었다면 이 장면을 계기로 주인공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기’처럼 옛 추억과 꿈이 되살아나고, 정서적 환기가 되면서 다시 새 삶을 꿈꾸는 그런 순간. 현실은 소설이 아니었고 더욱이 나는 주인공도 아니었다. 삶의 주인공은 커녕 스스로 '지나가는 행인1'을 자처했기에. 


하루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 삶도, 나도 한없이 버거웠다. 그러니 오래된 노트를 펼쳐, 작가를 꿈꾸던 과거의 나를 우연히 마주했다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노트의 바랜 종이색이 신경 쓰였다. 삶도 우중충한데, 종이색까지 우중충하자면 곱절로 우중충해질테니까.



'다 쓰면 버리자'는 마음으로 썼다. 일단 날짜를 쓰고, 그 날 하고 싶은 일을 적었다. 처음에는 적는 행위로만 끝난 날이 더 많았는데, 점차 하고 싶은 일을 실천하는 날이 늘었다. 필사를 시작하면서 기록에 속도가 붙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도 부리나케 노트를 펼쳐 기록했다. 후회하는 일이 생각날 때에도 외면하지 않고 일단 노트에 썼다.


써댔다. 투두리스트, 아이디어노트, 감정일기를 구분하지 않았다. 수시로 몰스킨을 펼쳐댔다. 보름쯤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문득문득 지난주의 어떤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날짜와 요일도 기억이 났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를 자유자재로 기억해낼 수 있었다.


매일을 기록하면서 하루의 시작과 끝이 분명해졌다. 아침에 노트를 펼쳐 날짜를 쓰면 하루가 시작되었다. 매일 주도적인 새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심지어 어제 했던 일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오늘 반복하더라도, 날마다 달랐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기록 하면서 배웠다.


또 하나, 내가 되살아났다. 그냥 쓰기만 했을 뿐인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다시 생생하게 느꼈다. 약 먹는 나, 책 읽는 나, 1일 1떡볶이를 먹는 나, 도서관에 가는 나, 등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나, 에너지가 없는 나, 음악을 좋아하는 나, 포기하고 싶은 나, 마음이 충만한 나. 수십, 수백 가지의 ‘나’라는 사람, 그 존재가 구체적으로 인식되었다. 수없이 작게 쪼개진 나를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책임감이 생겼다. 그러자 생의 욕구가 서서히 차올랐다. 먹고 싶은 음식이 분명하게 떠올라 군침이 돌 듯.      


그렇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걷기를 거부했고, 불현듯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으며, 마음대로 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대신 기록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타인의 삶을 보듯 내 삶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반년이 흘렀다. 변화가 생겼다. 나의 무기력을, 희귀병을, 원망하는 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받아들였다. 그 다음은 수월했다. 달라진 나로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어떻게? 그건 어렵지 않지. 왜? 몰스킨에 다 써두었으니까.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고, 연주회를 다녔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서서히 벗어났다. 무기력의 늪에서.



'쓰니까 조금씩 달라지잖아.' 이 작은 깨우침이 나를 일으켜 세우며 계속 기록하게 만들었다. 이런 작은 생각이 켜켜이 쌓여 나를 다독이고 품어주었다. 기록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기력하고 토라진 마음을 살피며 보듬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기록하기'가 나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마음이 동하면 몸은 저절로 움직여진다. 온 몸으로 걷기를 거부하던 내가 피아노 학원엘 가겠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문 밖을 나섰던 것처럼. 마음이 가뿐해지자 자연히 몸의 무기력함도 달아났다.




감사 일기를 왜 써? 감사할 일이 없는데?

나는 감사 일기에 마음이 꼬여 있는 사람이었다. 감사 일기를 쓴 후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체험기가 꼭 만병통치약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느껴졌다. 


기록의 힘을 경험한 뒤로 매일 감사 일기를 쓴다. 무턱대고 감사하다는 말만 쓸 수는 없어서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①오늘 하루 잘 한 일, ②새롭게 깨달은 일, ③나를 기쁘게 했던 순간, ④고마운 사람들을 적는다. 놀랍게도 충만함이 차오른다. 가끔 이 기분이 넘쳐흐를 때에는 눈물이 왈칵 샘솟기도 한다.


감사 일기는 자기 전의 ‘쓰는 루틴’ 중 하나인데, 갑자기 쓰려면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오늘 쓸 '감사'를 틈틈이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떠올리면서 한 번, 쓰면서 또 한 번, 나만의 '감사'는 더욱 견고해지고 두터워진다. 

  

오랜 시간 ‘감사’를 주제로 연구해온 긍정심리학자 로버트 에몬스Robert Emmons 교수는 무언가에 감사할 줄 안다는 건 ‘시각을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감사에 익숙한 사람들은 기필코 좋은 면을 찾아내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쁜 일이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사 일기는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도록 도와주었다. 익숙해지기까지, 적응이 될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할 수는 있다. 처음에는 나도 내 인생의 온갖 몹쓸 인연이 떠올라 감사 일기가 아닌 데쓰 노트를 작성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꾹 참고 쓰다보면 온다! 마음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사라지는 때가.


감사일기만 쓰는 건 아니다. 기록 식구들이 대거 늘었다. 기록을 통해 관찰과 점검이 가능하다는 걸 이젠 알기에 <약 복용 트래커>, <해빗 트래커>, <생활력 트래커>를 매일 쓴다. <위클리 플래너>를 쓰면서 내일의 할 일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록한다고 정말 달라질까? 적어도 나는 바뀌었다. 그리고 믿는다. 당신도 그럴 거라고.  무기력과 작별하고 싶은 당신이여, 쓰라!



당신에게 <오늘의 기록>를 제안합니다.

①오늘 하루 잘 한 일, ②새롭게 깨달은 일, ③나를 기쁘게 했던 순간, ④고마운 사람들을 적어보세요. 저처럼 쉽사리 삶의 노여움이 가시지 않더라도요. 처음엔 저도 솟구치는 반항심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좋은 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나를 바꾸더군요. 고마운 사람들? 처음엔 없었죠.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 기쁜 순간이 있었겠어요? 한데, 쓰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떠오릅니다. 내가 아닌 뇌가 떠올려주죠. 시작해보세요.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다면요. 이 기분 좋은 감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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