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이프콘텐츠를 소개합니다 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스타인웨이 만들기>라는 책을 읽다가 생각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사람이 아닌 피아노였으면 좋겠다고. 피아노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다음 생을 살아볼 의향이 있었다.
<스타인웨이 만들기>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탄생하는 과정을 소상히 기록한 책이다. '스타인웨이'는 '영창'이나 '삼익'처럼 피아노를 만드는 브랜드 이름. 풀네임은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다. 피아노 연주회가 열리는 공연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나무가 피아노로 완성되는 여정은 늘상 반복된다고 한다. 신기한 건, 대대로 전수되는 일관된 기술로 만들더라도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제각각이라는 것. 겉모습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쏙 닮았을지라도 서로 다른 내면을 갖는 피아노의 은근한 개성에 반해버렸다. 그것도 홀랑.
피아노 연주회를 가더라도 무대 위 피아노를 유심히 살핀 적은 없다. 이 날은 달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무대 위 피아노가 눈에 들어온 것. 연이어 나무를 구부리고, 부품이 조립되고, 페인트를 칠하는 각각의 단계가 머릿속에 자동 재생되었다. 이윽고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먼 훗날의 '나'를 미리 마주했다는 감격에 취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깨달았다. 이 구역의 클래식 음악에 미친 사람이 나라는 걸.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는 묻지 마시라. 나도 모른다. 그냥 클래식 음악이 좋아서 클래식 음악만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나 깊이 빠져 들어버렸다. 이제는 보셨죠? 클래식 음악에 미친 사람. 그게 바로 접니다!
처음엔 허영 때문이었다. 20대의 어느 날,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 그러다 현악기의 매력에 빠졌다. 비탈리의 <샤콘느>로 시작해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들으며. 허나, 오래가진 못했다. 음악보다 재미있는 게 많았고, 바빠졌기에. 클래식 음악은 어려웠고, 너무나 길었기에.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클래식 음악에 빠져든 순간, 나는 폼롤러 위에 누워 있었다. 랜덤으로 재생된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유리 같은 아이'로 묘사되었던 차이콥스키의 예민함을 고심하느라 정작 나의 근심을 잊어버리게 된 경험. 호흡이 긴 음악을 들으며 짧고 불규칙적이던 숨길이가 원래대로 돌아온 경험. 음악을 듣는 동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경험이 모두 모여, 나는 클래식 음악에 매료되고야 말았다. 이번엔 미치도록 진심으로.
십 수 년 전, 피아노 독주회에 갔다가 잠만 자고 나온 적이 있다. 이번엔 다를까? 달랐다. 한 음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는 나를 보았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귀를 떼지 못했다. 열렬히 듣고 또 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러 굳이 왜 연주회장으로 갈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연주회장을 나올 때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점이 좋아서 자꾸만 간다. 아름다움이 최고조로 충전되어 세상을 향한 나의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기에. 현실과 단절되고 나와 음악만이 남는 진공의 상태도 중독성이 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식으로 말하자면, '몰입'의 순간이 될테지.
돌이켜보면, 차곡차곡 적립된 찰나의 아름다움이 나를 구원했다. 우울한 요양인, 격노하는 요양인, 절망하는 요양인, 후회하는 요양인, 걷지 않는 요양인에서 사소한 기쁨에 감사할 줄 아는 요양인, 삶의 조화로움을 깨우친 요양인으로.
골똘히 궁리해보았다. 클래식 음악이 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변화시키고 미치게 만들까? 클래식 음악이란,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었다. 작곡가를 이해하고, 연주자를 이해하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 그러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다 카포da capo. 악보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연주하라는 의미의 음악용어다. 누군가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음악에 미친 사람 이야기를 또 털어놓자면, 휴대폰 뒷번호 네 자리를 고를 때, 작곡가 모차르트의 생일로 신청한 사람을 안다. 물론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