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이프콘텐츠를 소개합니다 ⑥
'몸'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내가! 요양과 방황 사이에서 끝내 체력을 갈고닦아 살아남았기에. 시작해볼까?
요양 1년 차엔 이런 상태였다. 버스 계단만 올라도 숨이 찼다. 지하철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으면 화가 났다. 앉아서 밥 먹는 일도 고된 일처럼 느껴졌다. 소리 내어 말할 힘조차 없었다. 오후엔 어김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외출 후 돌아와 씻을 힘도 없었다.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수시로 짜증이 났다. 사는 게 귀찮았다.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요양 3년 차, 현재는 이런 상태. 버스 정류장 한 두 개 정도는 걸어 다닐 수 있다. 계단 오르기가 두렵지 않다. 일정 후 모임 참석이 가능해졌다. 폭풍 수다까지 가능!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저녁까지 졸리지가 않다. 무거운 택배 박스도 번쩍 들어 올린다. 브레인 포그 증세가 사라졌고, 연속 집중시간이 길어졌다. 매일 외출을 해도 체력이 바닥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한 원망이 사라졌다. 친절을 베풀 여유가 생겼다. “까짓 거 해 보지 뭐!”가 몸에 밴 배짱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체력향상은 운동선수에게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체중감량만을 위한 일이라 여겼다. 심신단련은 산속에 사는 '자연인'에게나 어울린다고 믿었다.
내 잘못만은 아니다. 학창 시절의 체육 시간을 생각해보라. 수능시험의 중요도가 높은 학년이 될수록 운동 대신 공부를 하도록 배려받았다. 사실 공부도 체력으로 하는 건데, 당시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점수와 등급이 최우선의 가치였다.
헬스장에선 늘 '다이어트와 식단'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지도받았다.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한다는 조건은 애초부터 선택지에 없었다. 당연히 예쁘고 날씬한 몸만들기가 운동의 유일한 목적이 됐다. 해서, '운동=다이어트'라는 공식에 나도 모르게 길들여졌다.
물론 내 잘못도 있다.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타고나길 운동에 소질이 없다고 못 박아두고 쉬이 포기해버렸다. 체력이 귀한 줄도 모르고 함부로 막 써버렸다. 체력은 무한히 샘솟는 줄 착각했다. 무식의 소치다.
꼼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병이 난 줄 모르고 온 몸으로 뼈가 녹는 통증을 감내하며 4년을 버텼던 터였다. 고통의 감각이 몸과 마음에 선명히 새겨져 있었기에 온 몸으로 '걷기'를 거부하는 중이었다.
마음가짐이 전부다, 속여라!
특단의 처방을 내려야만 했다. 속이자! 걷기가 아니라 다른 목적을 붙였다. '이건 걷기가 아니라 피아노 학원에 가는 일이다, 이건 걷기가 아니라 도서관에 가기 위함이다. 지금 나는 크림 브륄레를 먹으러 가는 중이다.'라고. 어떤 날은 좋아하는 양말로 유혹했다. 이 양말을 신고,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효과가 있었다. 채소를 거부하는 아이를 위해 잘게 다진 채소 볶음밥을 만들어 먹이는 부모처럼 스스로를 돌보았다.
다음으로 체력 롤모델을 정했다. 축구선수 박지성. 처음부터 너무 거대한 목표라고? 걱정을 마시라. '두 개의 심장'이라 불리며 필드를 누비던 박지성 선수처럼 체력 훈련을 하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집 밖으로 나와 '목적 달성형 걷기'를 시작하더라도 변덕을 부려 언제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이를 차단할 마인드셋이 절실했다. '나는 내일 한일전을 앞둔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지성이다.'라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심지어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불끈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를 더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기 싫은 날은 역도선수 장미란과 리듬체조선수 손연재가 된 듯 굴었다. 서서 팔 굽혀 펴기를 하거나 폼롤러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향상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뇌 속 시냅스가 늘어나 실제 실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뇌 속 거울 뉴런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상상한 대로 변화를 이끌기 때문. 그러니까 허튼 시도는 아니란 말씀이다.
퇴근 후 운동? 엄두가 나질 않는다면, 일단 마음을 속이는 일부터 시작해보라. “내가 손흥민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하고 싶은 운동이 반드시 많아질 테니.
좋아하는 운동을 찾고 꾸준히 하라!
속이고 달래며 걸은 지, 한 달이 지나자 걷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두 달이 지나자 매일 45분씩 쉬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딱 축구 전반전 시간만큼이었다. ‘할 만 한데?’라는 생각이 스친다면 위험 신호다. 전반전을 뛰었으니 후반전과 연장전까지 무리 없이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판이자 욕심. 기분에 취해 90분을 걷고서 며칠을 내리 쉬어야만 했다.
쉬고 나면, 마음가짐부터 재세팅 해야 한다. 다시 원점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매일’+‘꾸준히’의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좋아하는 운동을 택해야 한다. 나의 수십 년 치 <운동 실패 이력서>를 살펴보면, 유일하게 잘하고 좋아하던 운동이 ‘걷기’였기에 다른 운동에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다.
더 걸을 수 있지만 내일을 위해 요즘도 45분만 걷는다. 그만큼이 내가 매일 쉬지 않고 걷기 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명심하자. 체력향상은 장기전이다.
잘 먹고, 제발 자라!
배달 음식을 끊었다. 몇 년 동안 천생연분 등급을 유지했으니 그 허전함이 이루 말할 길이 없었는데 눈을 딱 감고 배달 어플부터 지웠다. 시장에서 몸에 좋은 식재료를 골라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놀랍게도 음식이 달라지면서 지방간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제 때 잘 자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잘 자면 체력이 훨씬 더, 많이, 크게 좋아진다. 즉효다 즉효. 단기 체력 향상은 잘 먹고 잘 자는 일로, 장기 체력 향상은 운동으로 관리하자.
나도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천천히 걷는데 운동 효과가 있을까? 체력이 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는다. 처음엔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로 걸었고, 지금은 거북이만큼의 속도로 걷는다. 그래도 늘더라.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결국 누가 이겼는가? ‘빨리빨리’는 중요하지 않다. 느리더라도 오늘 할 운동을 끝내면 된다.
바쁘다. 정말 운동할 시간이 없다.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 체력관리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내가 그 ‘짬’을 못 낸다고 징징대다가 한 순간에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 아닌가. 또한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건 시간관리를 잘못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낭비하는 시간을 체크하라. 체력이 좋아지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니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드라마 <미생>에서 바둑 선생님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자.
걸을 수 없는 상태로 희귀병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났다. 이젠 걸을 수 있고, 스스로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며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이게 다 체력 덕분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나를 돌볼 수 있는 체력이 필수였다는 진리, 왜 진작 몰랐을까.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지.”라고 빠르게 생각 전환이 가능한 것도 체력이 있어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인생은 ‘몸’으로 사는 거지.” 맞다. 건강한 몸이면 된다. 그러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몸이 안 좋아서 못해요. 죄송해요.” 이제 이런 말과는 영원히 안녕을 고한다. 이제 그만 쓰고, 걸으러 가야겠다. 저 먼저 몸쓰러 갑니다, 여러분.
생활력 트래커로 나만의 휴식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일을 쭉 나열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기됩니다. 또 내 인생이 든든해져요.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 구체적인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생활 에너지가 충전되는 당신의 <라이프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잘 쉬고 있으시죠?
휴가를 부추기던 여행작가였다. 번아웃을 방치하다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3년 동안 요양하며 깨달았다. 우리 삶엔 가끔의 휴가보다 매일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나답게 일하고, 나답게 잘 쉬고, 나답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화로운삶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날마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충전하면서 ‘잘 쉬는 기술’을 궁리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