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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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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10. 2020

덕분에 비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기분

여느 때처럼 오빠랑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삼겹살을 굽고 있는 장면이 나오자 뜬금없이 구역질이 났다.

'응? 이거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입덧인가? 입덧은 음식 냄새를 맡거나 먹을 때 하는 거 아닌가?'

평소 같으면 맛있겠다고, 내일 당장 먹으러 가자고 했을 장면을 보고 속이 좋지 않아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다음날, 역시나 고기는 생각만 해도 울렁거린다.

어쩔 수 없이 얼마간 채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참 좋은 거라.

고기를 줄여야지, 유제품을 줄여야지, 하는 생각이 마음의 빚으로 쌓여있었던 터라, 일시적이겠지만 이렇게 억지로라도 끊게 되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 냄새 못 맡는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 맨밥에 김치가 그렇게 맛있었던 임신 기간.

여름이는 분명 촌놈 입맛일 거라며 웃었다.

덕분에 한식을 많이 먹었고, 비슷비슷하던 점심 메뉴가 다양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마침 회사에 뜻이 맞는 친구가 있어 함께 고기가 들어 있지 않은 메뉴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했고, 돈가스집에서 파는 감자 고로케, 채식당에서 파는 콩고기 탕수육, 쌀국수집에서 파는 야채 볶음밥 같은 의외의 메뉴를 발견하기도 했다.


입덧이 끝난 뒤에도 메뉴를 고를 땐 조금 신중해졌고, 비건 식당, 비건 빵집을 자주 기웃거렸다. 매일 산책을 하고, 물을 자주 마시고, 인스턴트를 줄이고, 커피 대신 좋은 차를, 면 대신 밥을 챙겨 먹는 나날. 배 속에서 사람이 자란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와 닿지 않지만,  뭔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든다. 그래서 생각만 하고 미뤘던 다짐들을 하나둘 꺼내서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네 핑계로 뭐든 하다 보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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