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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Sep 30. 2021

바야흐로 산책의 계절

글을 쓰기 위해 꼬박 한 달만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고, 예정되어 있던 큰 행사들을 마치고 나니 가을과 함께 무기력이 찾아왔다. 가을과 무기력이라니, 너무 안 어울리지만 목표가 사라져서 그런가, 운동도 귀찮고 글도 쓰기 싫고 일도 공부도 지겨웠다.

"여름 내내 스스로에게 집중했으니 가을에는 여름이와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보는 게 어때? 애들은 정말 금방 크거든, 가을도 금방 지나가고." 

엄마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침, 가을이다. 산책과 소풍의 계절. 이맘 때는 출판이든 잡지든 바쁜 시즌이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언제나 아쉽게 겨울을 맞이했는데,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올해는 마음만 먹으면 계절을 만끽할 수 있다(물론 돌쟁이 애기 엄마는 '큰맘'을 먹어야 한다). 게다가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매일매일 하늘이 예뻐서 몸이 근질근질! 9월에는 숙제처럼 느껴지던 일과를 내려놓고 여름이와 매일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마음을 먹자마자 습관처럼 산책을 사전에 검색해 보았다(지겹다 지겨워).

산책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소풍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

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은 '휴식'과 거리가 멀지만, 아무튼!



평일 낮의 공원은 어디든 한적한 편이다. 좁은 집에 갇혀 있던 아이는 넓고 평평한 잔디밭 한가운데서 혼자 걷다가 넘어졌다가 일어났다가 쪼그려 앉았다가 낙엽 주워 먹고 잔디 뽑아 먹으며 신나게 논다.

집에서는 베이비룸 안에 넣어 놓고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하기 바쁜데 밖에서는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뭐든 오케이다. 덕분에 신난 아이의 발걸음이 날로 가벼워진다. 처음 며칠은 열심히 쫓아다녔는데, 이제는 그냥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다가 넘어진 아이를 향해 "어 괜찮아 일어나면 돼~~!" 한다.


유모차에 물티슈와 과자 정도만 챙겨 한 바퀴 휘휘 돌고 돌아오던 처음과 달리, 요즘은 피크닉 가방에 돗자리와 각종 간식, 기저귀, 얇은 담요, 모자 등등 잔뜩 챙겨 나가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낸다. 산책보다는 소풍에 가까운 외출. 실컷 놀다가 돗자리로 돌아온 아이와 함께 시금치 과자를 먹거나 보리차를 나눠 마시는 것이 새로운 기쁨이다.



공원으로, 놀이터로, 해변으로 부지런히 소풍을 다녀온 한 달 사이, 양 손을 붙잡고 겨우 몇 걸음을 걷던 아이는 혼자서도 잘 걷는 어린이가 되었다. 걷지 못하는 아이와의 산책은 유모차만 밀고 있을 뿐, 혼자 하는 산책과 다름이 없었는데, 걷기 시작한 아이와의 산책은 확실히 둘이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든다. 혼자 나왔으면 조용히 걷다 들어갈 길도, 사람 좋아하는 여름이가 여기저기 인사하고 알은체를 하는 덕분에 지나가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과자도 얻어먹고 강아지들과도 인사하는 다정한 길이 되었다.



아이와의 외출은 확실히 고되다. 챙길 것도 많고, 아기 컨디션과 낮잠, 식사를 고려해 외출 시간도 잘 정해야 한다. 다녀와서 깨끗이 씻기고 바로 이어 밥을 먹인 뒤 재우는 동안 나는 선선해진 날씨가 무색하게 땀을 뻘뻘 흘리고 녹초가 된다. 하지만 확실히 즐겁다.

'몸은 힘들지만 아이가 좋아하니까 괜찮다'는 말이 참 평면적인데, 눈앞에 온통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 작은 아이의 즐거움을 관찰하는 즐거움이 정말로 크다. 끝이 안 보이게 큰 나무도 신기하고, 떨어진 낙엽도, 개미도, 꽃도, 풀도, 하늘도, 구름도, 바다도, 모래도 처음이라니. 반짝반짝한 눈과 조그만 손가락으로 세상을 만나고 뒤뚱뒤뚱 나아가는 아이의 걸음을 구경하며 똑같은 풍경이 새로이 보인다.


휴식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쉼이라는 뜻이다. 조용히 누워서 발 뻗고 쉬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하던 일들을 멈추고 잘 놀았으니 우리의 외출도 엄연한 산책이자 소풍인 것으로!(다만, 나도 누가 씻기고 먹여주면 참 좋겠다)

9월 한 달 잘 놀았으니, 10월에는 약속된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예정된 시험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추워서 외출이 뜸해지는 날까지 부지런히 산책과 소풍을 즐기는 것이 목표이지만 9월만큼 마음껏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역시 엄마 말 듣기를 잘했다.

9월을 하루 남기고, 내일은 또 어디로 소풍을 갈지 찾아보는 중이다. 넓고 한적한 곳으로, 또 긴 산책을 떠나 봐야지. 특별히 내일은 시금치 과자 대신 포테토스틱을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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