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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28. 2022

3년 만에 발리라니

드물게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친구와 휴가가 겹쳤고, 끝이 보이지 않던 두 개의 마감을 가까스로 넘기고도 며칠이 남았다. 여행자 보험을 신청하고 퇴근 후 마트에 들러 떡볶이며 여분의 콘센트 같은 것들을 샀다. 진짜 떠날 일만 남았다. 결혼 후 남편을 두고 떠나는 두 번째 여행. 시부모님의 눈치가 살짝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나니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친구들은 다음 휴가를, 올겨울을, 내년 여름을 자꾸만 기약하는데, 왜인지 나는 마음이 조급하다. 내가 다시 혼자 떠날 수 있을까, 이직해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주어진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건 아닌가. 아기도 낳고 싶은데 더 늦으면 안 되지 않을까, 아기를 낳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아니 해오던 것들을 그대로 할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을 안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그런 고민은 다 잊어버린 채 종일 서핑을 했고, 매일 오토바이를 탔고, 낯선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종종 그때를 생각한다. 자유롭고 건강한 기분.

여행을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고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시 떠나지 못했다.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올까. 막막한 마음을 달래며 지난 여행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리고 드디어, 다시 떠난다. 3년 만에! 이번엔 아기를 낳고 떠나는 첫 여행이다. 그동안 임신과 출산을 했고, 회사 타이틀보다 일의 퀄리티가 중요한 프리랜서가 되었다. 아이도 키우고 나도 키우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성장에 대한 갈증도, 막연한 위시리스트도 확연히 줄었다. 진짜로 시간이 없으니 외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좋아 보이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절정으로 치닫던 코로나가 주춤하면서 주변에서 하나둘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그런가 보다, 했다. 3년 전 함께 발리에 다녀온 친구가 발리행 티켓을 끊었다고 했을 때도 “우와, 드디어!” 하고 말았다. 이제 막 말문이 터져 “엄마 사랑해요” “엄마 아포 안아줘요” 같은 말로 심장을 터뜨리는 아이를 두고 떠나는 여행은 애초에 선택지에도 없었다. 그런데 소식을 들은 남편이 “은지도 다녀올래?”라고 운을 띄운 순간,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번은 “됐어, 웬 발리”였고, 그다음 몇 번은 “애기는 어쩌고”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두고두고 곱씹을 정도로 좋았던 순간이었지만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두고 다녀올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근거도 없이 자신만만했다. 

“이제 다 컸어, 장모님께 일주일, 엄마한테 일주일 하원해 달라고 하고 저녁엔 내가 데리고 자면 되지. 아침에 등원도 문제없고.” 

문제가 없긴.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휴가라고 생각해. 가고 싶어 했잖아. 갈 수 있을 때 가야지 미루면 못 가.”

그 말에 슬쩍 마음이 동했다. 아이를 재우고 발리를 곱씹으며 썼던 글을 꺼내 읽었다. 달뜬 설렘이 뚝뚝 묻어나는 글들. 에라 모르겠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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