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리엘 바르베리의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
프랑스의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의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예술과 철학, 일본문화에 대한 사유와 동경이 넘치는 소설이다.
간결한 줄거리에 사건 중심의 서술보다는 등장인물의 자기 고백적 독백이 이어지며 철학적 에세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부자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에서 수위로 일하며 틈틈이 책을 읽는 르네, 그는 독학자이다. 그의 세계는 꽉 맞물린 톱니바퀴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톱니바퀴란 이런 명제들의 총합이다.
“노동자 집단은 마르크스의 작품에서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일단 그냥 읽기조차 어렵다. 마르크스의 글은 품위 있고 문장은 치밀하며 명제는 복잡하다. 17쪽.”
“그들에게 나는 세계적인 거대한 환상을 돌리는 무수한 톱니바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삶의 의미는 쉽게 해득될 수 있다고 믿는 하찮은 톱니바퀴. 21쪽.”
촘촘하게 맞물려 있는 톱니바퀴의 세계에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관계는 뻔하고, 쉽게 읽히며, 오차를 허용하지 않아 닫혀 있다.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적 자각이 선명한 르네는 되도록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일종의 연기를 한다.
그럼에도 르네의 특별함은 마찬가지로 남다른 시선을 지닌 또 다른 인물에게 드러난다. 르네가 일하는 아파트에 사는 팔로마는 또 다른 독학자이자, 상위 계층의 부모님과 이웃의 부조리를 일찍부터 알아채버려 괴로운 12살 청소년이다. 팔로마는 르네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는 자기 가족의 부조리함을 견딜 수 없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할 계획이다. 팔로마의 공책에는 가족의 말과 행동에 대한 솔직한 분석과 사색이 가득하다. 약간 중2병스럽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를 빼고 생각해 봐도 그의 사유는 꽤나 날카롭고 깊은 것이었다.
“아빠는 6시에 일어나 아주 진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이런 식으로 아빠는 매일 자신을 쌓는다. '자신을 쌓는다'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그 일을 매번 새로운 일종의 건설이라 보기 때문이다. 매일 밤 모든 것이 재로 변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렇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제 삶을 산다.
그런데 이 정체성이라는 것은 절망을 가리고 거울 앞에 선 자신에게 믿고 싶은 거짓말을 하는, 아주 덧없고 엉성한 덩어리다. 아빠에게 신문과 커피는 호박이 마차로 바뀌듯 아빠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요술 지팡이다. 126쪽.”
이렇듯 다른 듯 닮은 르네와 팔로마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외로운 사람들이기도 했는데, 그들에게 예술과 철학에서 비롯된 사유의 시간은 정신적인 은신처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사색은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자기 언어로 세계를 재정의하는 과정으로, 예측 가능한 톱니바퀴의 관계성 밖에서 진정한 자아와 참된 삶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르네는 팔로마를 만나면서 자기 삶에도 가능한 아름다움을 허용하고, 팔로마는 르네를 통해 자기 오류를 인식하고 수정하며 성장의 길로 나아간다. 타인의 시선을 넘어 자기 언어로 세상을 읽어내는 품격을 갖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진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 인생에 도래할 모든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것이나 살아가는 그 순간에는 오롯이 살아있는 자신으로 채워진 온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