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아Q정전>
중국의 사상가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을 읽었다. 주인공 '아Q'는 날품팔이로, 신해혁명(1911년) 전후, 중국 사회의 하층민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는데 '김씨'라든가 'K씨'처럼 이름을 정확하게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보편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아Q는 특정인이 아니라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아Q가 살아가는 방식은 간단하다. 짓밟히고 짓밟는다. 짓밟을 수 없다면 자기 편할 대로 정신승리 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모멸감과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며 나름대로 의기양양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정신승리는 기괴하고 상당히 또라이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것을 승리로 바꾸었다.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연달아 두 대 갈겼는데, 얼얼한 게 조금 아팠다. 때리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때린 사람이 자기이고 맞은 사람은 또다른 자기인 것처럼 느껴지더니, 조금 지나자 자기가 다른 사람을 때린 것처럼 여겨졌다. 그제야 그는 만족스럽게 승리한 기분이 되어 자리에 누웠다. 그는 잠이 들었다. <루쉰의 소설 '아Q정전' 중에서, 문학동네, 27쪽>
문제는 아Q가 살아가는 방식이 특이하지 않다는 데 있다. 아Q가 약자에게 그렇게 하듯, 자신도 마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뜯기고, 괴롭힘 당하며 살고 있다. 그가 속한 세계는 그냥 무법천지다. 도덕이나 질서, 부끄러움 같은 개념이 없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 딱 감고 '미개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짐승의 방식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그러한 세계 속에서 튀지 않는, 평범하게 살아왔을 뿐인 아Q를 단죄할 수 있을까.
마을에서 더는 날품을 팔 수 없게 되자 성안으로 건너가 잠시 머물던 아Q는 다시 살던 마을로 되돌아온다. 그는 마을 사람에게 졸개에 불과했던 도둑질에 대한 일을 떠벌린다. 마을 사람 일부는 아Q를 경외하고, 지역 유지들은 아Q의 전리품인 성안의 낡은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그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나중에 마을에 도둑이 들자, 정작 자신이 하지도 않은 도둑질로 인해 아Q는 총살당하게 된다. 아Q가 성안에서 처형된 사람에 대해 떠들어대며 오락거리로 소비했듯이, 아Q의 죽음도 같은 방식으로 소비된다. 결국 아Q를 단죄한 사람은 아Q가 아닌 모든 사람이었다.
혁명이 개혁인지 도둑질인지, 말장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럽게 썩어버린 사회. 루쉰은 그러한 중국 사회를 비판하고 계몽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나 계몽이 필요한 아Q와 같은 사람 중에 루쉰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었을지.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비극적이었다.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책장을 덮지 못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