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의 수레 이야기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오래간다.


특히 잊으려고 할수록 야속하게 더 선명해지는 게 사람 심리다. 처음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란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래, 인생은 빈 수레지. 근데 비어 있을 정도로 수거한다는 뜻은 무슨 뜻이지?’

바보 같은 의미지만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고 애썼던 기억이 또렷하다. 이후 한문 ‘공수래공수거’라는 걸 알게 되고 자조했다.


수레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는 건, 인생에 때때로 ‘수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에 맞먹는 로망이 내 차 마련 아닐까? 목이 좋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도로 한편, 카페 앞에 차를 댄 손님은 재빨리 카페로 뛰어 들어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음료를 받으면 다시 잽싸게 차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얀 자동차는 시원하게 나아가며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좀 부럽긴 하네.’

수조 같은 매장에서 앞치마를 입고 덤벙거리며 음료를 제조하는 내게 그들의 모습은 자유롭기만 하다.


나는 서른이 넘었지만 운전면허증이 없다. 몇 년 전에 필기 응시를 하고 합격했으나 실기를 치르지 않아 만료되었다. 실기에서 내빼는, 나다운 모습이다. 서울은 대중교통이 그물망처럼 촘촘히 발달해있다. 일상생활에서 자가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옆라인의 막힌 도로를 두고 경쾌하게 달리는 버스를 타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가끔 할머니와 멀리 장 보러 나갈 때나 불시에 병원으로 달려가야 할 때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문드문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면허를 따거나 차를 살 의향은 없다(내 보금자리가 생겨도 차를 사진 않을 것이다).


‘우리’라는 수식어가 낯선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내막은 더 충격적이다. 나는 그녀의 피를 타고났고 겪어 보진 않았지만 추정하건대 그녀와 나의 성정은 비슷한 것 같다. 그랬기에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어느 날 충동을 못 이겨 그녀의 전철을 밟는다면 그것만큼 내게 수치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내가 쫄보라서다. 인도에서도 흔히 들리는 욕설과 고함의 난무, 경적 소리, 오토바이의 질주를 보면 몸이 굳는다. 중학생 교복을 입었던, 비 오는 어느 날 이대역 앞에서였다. 빗길을 질주하던 오토바이가 그대로 미끄러지던 걸 목격했다. 플라스틱 접시가 나뒹굴고 헬멧도 없이 운전하던 배달원은 도로 가운데 주저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짜증이 나 보였다. 그리고 나는 우산을 잡은 채 인도의 안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1초라도 빨리 버스가 오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소유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은 내게 자가용은 족쇄 같다. 골목 위에 주차된 차들을 보면 새 차처럼 멀끔한 차가 있는 반면 찌그러진 채 울퉁불퉁한 차도 있다. 차를 자체는 장기 할부로 사면되는 것이고 스마트폰 2년 할부에 익숙하기에 규모와 기간이 길어진 것이라 생각하면 문턱은 한결 낮아진다. 그러나 차는 꾸준히 관리가 필요하다. 보험료, 유지비, 기름값 등등은 폐차하기 전까지 계속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쌩하니 사라지던 손님들이 더는 부럽지 않다. 기억 밖으로 밀려난다. 외제차, 슈퍼카를 보면서도 감흥이 없다. 오히려 저걸 관리하려면 얼마나 에너지가 들까 싶다. 자가용이 주는 기동력은 무시 못하지만 내게는 그것을 얻기 위해 희생해야 할 것들이 더 크다. 결국엔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삶의 어느 순간을 지나면 가득 차 있던 수레를 탈탈 털어야 하는 시점이 온다. 나는 대청소하기엔 체력이 부족하니까 아예 소유하지 않는 무식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수레를 들이지 않는 각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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