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어어? 내가 왜 이러지?
실업급여가 끝나고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병이 낫지 않았는데 회사라는 집단에 다시 소속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암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맡은 이상 할머니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역할을 완수하고 싶다.
고로 나는 두 탕을 뛰는 알바생이 되었다.
주말 카페 오픈 알바와 주 4일 식빵 전문점 마감 알바.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주문을 받고, 음료를 제조하다가 오후 알바생과 교대한다. 또는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빵을 썰고 포장하고 팔고 가게문을 닫는다. 시급으로 받고 길면 6시간 일하거나 짧으면 2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도합 주 6일을 일하는 20세기 말 사람으로 회기했지만 주간 근로 시간은 40시간을 넘지 않는다.
이제는 10년 전이 된 대학생 시절 알바 경험을 되살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다. 카페는 실업급여 기간 동안 자격증을 따놓은 게 도움이 되었다. 식빵 포장은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서 주름을 잡아야 하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놀라워라 인체의 신비.
맞이 인사부터 배웅 인사까지, 편의점과 마트의 사장님의 등쌀에 못 이겨 큰소리로 외치던 버릇이 다시금 튀어나온다. 며칠을 지나고 나서 문득 든 생각 한 스쿱.
'와 씨. 나 이렇게 친절한 인간이 아닌데 왜 이러냐.'
사포 저리 가라 하는 까칠의 대명사였는데 물건을 하나 사는 손님에게 끈덕지게 말하고 묻는다.
카페에선 이렇게.
'어서 오세요.', '아메리카노 한 잔 3,200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영수증 필요하세요?', '준비되면 불러드릴게요.', '맛있게 드세요.', '안녕히 가세요.'
빵집에선 또 저렇게.
'어서 오세요.', '초코 식빵, 치즈 식빵 두 제품 합쳐서 만 원입니다.',
'봉투 50원인데 필요하세요?' '카드 받았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빵을 포장하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참 징글징글하게 말한다. 내가 손님이면 말 걸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나와 또 다른 내가 또렷하게 인식된다.
'이 모습은 진짜 내가 아냐.'
나는 이렇게 친절하고 사근사근하지 않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든다. 드레스코드를 잘못 알고 참석한 모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응당 돈을 받고 일하는 이상 온전한 나를 드러낼 수는 없다. 그리고 일터에서 더는 내 온전한 모습을 하는 헛된 노력은 하지 않는다.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지 않고 알려지길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난 알바생의 페르소나를 발견했고 그걸 거부하지 않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밑져야 본전. 서비스직에선 친절이 당연한 거니까.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감내하는 일상을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배운 것이다.
오늘도 그저 바랄 뿐이다.
진상 손님이 나타나지 않길,
포스 기나 기계가 오작동하지 않길,
교대할 알바생이 1초라도 빨리 오거나
빵이 다 팔려서 조기 퇴근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