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나도 남들처럼 회색빛 새벽을 바라보는 입시를 겪었다. 당시에는 차가운 공기와 남들 자고 있는 시간에 혼자 일어났다는 묘한 긴장감, 새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에 묘한 낭만을 느꼈다. 지금 새벽에 일어나라고 한다면? 평소와 달리 활발해지는 장운동에 화장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무튼 청소년이지만 항상 쩔어살던 나를 보고 하늘도 이런 몰골은 1년 이상 볼 수 없다는 마음에서였을까 무사히 대학교에 들어갔다.
소심한 나를 벗어던지고 조금 멋진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셀프로 파마를 했다. 왜 미용실이 존재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뽀글이가 된 나는 다시 소심이로 돌아가 버렸다. 소심한 마음은 고데기의 구입과 함께 다시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개버릇 남 못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에는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어,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스스로를 토닥여줬는데 지금은...
그냥 이렇게 혼자가 편한 내 성향인 것 같다. 지금은 보험이 안 되는 치과 치료에 벌벌 떨지 않을 정도의 돈이 있지만-나에겐 할부가 있다-누구를 적극적으로 만나는 힘은 부족한 것 같다. 아무튼 대학을 졸업하고 짧은 취준생의 시기를 거쳐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3년 6년 9년이 고비라고들 하는데 나는 3개월 6개월 9개월이 고비였다. 마의 8개월을 넘기지 못한 곳도 있다. 그래서 이력서는 항상 애매한 공백기를 안고 있다. 학생 때는 내가 봐도 존버의 대명사였던 것 같은데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간간이 들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2년을 아슬아슬하게 채운 경험이 몇 번 있다는 점이다.
이게 다다. 남들처럼 성공궤도에 오른 적도 없고 뭐 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아직은) 없다.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도 미숙하고 생각에는 깊이감이 (아직은?) 부족하다. 남들 따라 시작한 SNS는 내 걸 올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구경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벤트 뭐 하나 당첨되고 싶어서 좋아요를 누르다 보니 어느새 내 계정은 홍보팀 구독 계정이 되어버린 듯하다.
그리하여 이런 신세 한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쓸 이야기가 없다. 글을 유려하게 쓰지도 못하고, 재기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몇 줄 끄적이면서 느낀 건 글을 못쓰겠다고 이야기하는 건 왠지 자신감이 붙을 것 같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글을 깨작거리고 있느뇨, 못한다고 구시렁거리면서 왜 아이패드 배터리를 소모해 가며, 밤늦게까지 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현재에 올인할 수 없으니까.
하나에 몰빵해서 그만큼 대가가 돌아온다면 좋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이제 공갈 치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매주 사는 로또도 투자금 회수가 안 되는 판에.)
그래서 나도 뭔가를 해볼 수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악기나 그림, 사진 등을 시도했으나 모두 회사에 기부로 끝난 것 같다. SNS도 못 하고.. 못 하는 것들 중 사이에서 가뭄에 콩 나듯 좋아하는 걸로는 옆으로 누워서 책 읽기. 그리고 이렇게 글쓰기.
어쩌면 내가 유일하게 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가 이런 글이라고 생각해서 글을 쓰게 된 것인데 아쉽게도 목적어가 없는 글쓰기가 되어버린 듯하여 아쉬울 뿐이다. 생활 패턴은 항상 똑같고 아쉽게도 사건이 없다. 통찰력이라도 있어서 사회 변화나 정치 환경을 분석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깜냥은 주어지지 않았다. 일상의 한 줄기를 뽑아내기엔 그 일상이 토마토 줄기 같아서 얇고 가늘다. 방울토마토라도 맺혀야 뭘 따서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휴...
조금 더 고민해야겠다.